‘엄숙주의 관행’ 깬 대법 판결…1·2심 설명해주고 결론

‘엄숙주의 관행’ 깬 대법 판결…1·2심 설명해주고 결론

입력 2016-09-28 09:10
업데이트 2016-09-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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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실 자세히 요약 설명→당사자 이해 유도…‘통영함 사건’ 재판

난해하고 복잡한 판결이 많기로 유명한 대법원에서 ‘새 옷’을 입힌 판결문이 등장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달 23일 선고된 황기철(59) 전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 사건’ 무죄 선고 판결문이 주인공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가 내놓은 이 판결문은 기존 대법 판결과는 달리 상고이유를 판단하기에 앞서 1, 2심 재판부가 파악한 사실관계를 요약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에선 약 4쪽에 걸친 ‘무기체계 구매사업의 전반적 진행절차 및 관련 사건의 개요’라는 부분을 통해 하급심의 사실관계를 요약해 풀어놓았다.

대법원 판결문은 보통 피고인이나 검찰의 상고이유를 소개한 후에 상고이유가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그런데 이 판결문은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사실심’인 1, 2심 판결문이 하는 것처럼 사건 개요를 먼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법률 적용의 잘잘못을 가리는 ‘법률심’인 대법원은 자칫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판결문에 하급심이 파악한 사건의 개요를 세세히 소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 대법관은 황 전 총장 사건의 경우에는 복잡한 무기구매사업 진행절차와 관련해 사건 개요의 설명 없이는 당사자들이 무죄 판단의 법리적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기구매의 입찰과정과 낙찰사업자와의 계약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황 전 총장이 각각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권한을 가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박 대법관은 이런 사실관계를 기초로 검찰이 적용한 혐의 내용의 증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문에서 사실관계를 먼저 소개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방산비리 의혹 사건의 복잡성을 고려해 사건 당사자들과 이해관계인들이 법리적 판단을 쉽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사건 개요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판결문 형태를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판결은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의견을 밝혀 하급심 판결의 기준과 지향점을 제시한다. 이번 판결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대법관 출신인 박시환(63·사법연수원 12기)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상고심 재판의 주심 대법관이 새로운 스타일의 판결문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며 “사건 증가로 시간에 쫓기는 대법관과 전속 재판연구관들이 따로 시간을 내 사건 개요를 정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연구관을 지낸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재판은 단순히 정답을 찾아 결론을 던져주는 것만은 아니다”며 “당사자가 이해하고 승복할 수 있도록 대법원이 더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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