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학습 부담 줄이는 ‘숙제 없는 학교’ “내 아이 뒤처질까” 불안감은 여전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학습 부담 줄이는 ‘숙제 없는 학교’ “내 아이 뒤처질까” 불안감은 여전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6-09-08 23:04
업데이트 2016-09-09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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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제대로 안 쥐니까 글씨가 비뚤빼뚤한 거야. 이렇게 해야지. 자, 아빠 연필 쥐는 거 잘 봐.”

몸소 시범까지 보여 줬지만, 큰애는 몇 번 따라해 보더니 곧 엉뚱한 방법으로 연필을 쥐었습니다. 글씨가 제대로 써질 리 없습니다. 형편없는 글씨를 보면서 그게 아니라고 다그치다가 “그럼 네 마음대로 해”라면서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내준 숙제를 깜빡해 일요일 늦은 저녁 큰애와 함께 책상에 앉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시킨 ‘속담 10번 써오기’ 숙제가 일곱 살 큰애에겐 너무 버거운 모양입니다. 한 주 동안 가장 재밌었던 일을 그려오는 그림일기는 좋아하지만, 쓰기가 미숙한 탓에 속담 써오기는 싫어합니다.

졸린 큰애를 붙잡아 놓고 숙제를 시키려니 답답합니다. ‘이래서 내년부터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려나?’ 긴 한숨이 나옵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면서 소릴 꽥꽥 질러대는 모습이 마치 영화처럼 그려집니다. 회초리를 들고 다그치는 제 모습도 불현듯 지나갑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큰애가 결국 “나 숙제 싫어, 자고 싶어”라면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꺽꺽댑니다. 연필을 놓게 하고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아빠가 잘못했다. 숙제 안 해 가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선생님한테 깜빡 잊고 안 했다고 할게. 아빠가 미안해.”

놀기대장인 큰애를 보면서 무조건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했습니다. 그저 친구들과의 관계만 좋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친구한테 맞거나 왕따당하지만 않고 학교만 잘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는 자기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고, 성적은 그럴 때 올라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 때문에 아이를 다그치지 않기로 아내와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큰애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흔들립니다. 큰애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질 것 같고, 그것 때문에 큰애도 그리고 우리 부부도 상처받을 것 같고 속상할 것 같습니다. 느긋했던 마음에 조바심이 듭니다.

취재차 만났던 한 소아과 의사가 해 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을 앞두고 한글을 못 깨우친 아이가 걱정스러웠던 어떤 부모가 스파르타식으로 유명한 학원에 애를 보냈습니다. 강압적인 학원 수업에 아이는 멍들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는 결국 실어증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숨통을 터주겠다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30일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숙제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기초 한글과 수학은 학교에서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저로선 정말 환영할 만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걱정도 앞섭니다. 교과서 수준이 너무 높아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가기 어렵다는 게 학부모들의 지적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수포자’(수학포기자)를 낳는 수학 교과서를 비롯해 수학익힘책 역시 집에서 숙제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느긋함을 잃어버린 학부모들이 혹시 학원으로 달려갈지 우려됩니다.

우리 교육의 큰 축은 국가교육과정과 평가입니다. 교육과정은 너무 빡빡하고, 줄세우기식 평가는 너무 가혹합니다. 여기에 최종 목표점인 대학 입학의 경쟁 속에서 뒤처지면 패배자가 될 수 있는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숙제 없는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조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합니다만, 혹여 자신의 인기를 올리려는 것은 아닌지, 내년에 제가 학부모가 되면 냉정하게 바라볼 예정입니다.

gjkim@seoul.co.kr
2016-09-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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