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투쟁 기록, 영·독·일서 잇따라 나왔다

독립운동 투쟁 기록, 영·독·일서 잇따라 나왔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9-02-26 23:34
업데이트 2019-02-2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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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英 총리에 보낸 독립청원 서한 영문 국호 ‘Republic of Korea’ 첫 사용
1920년대 주독 日대사관 외교전문엔 獨 유학 한인들 독립운동 사찰한 정황
日 개인 소장 독립선언서 초판 원본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5월 24일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당시 영국 총리 앞으로 보낸 독립 청원 서한. 한미클럽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5월 24일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당시 영국 총리 앞으로 보낸 독립 청원 서한.
한미클럽 제공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해외 각지에서 분투한 지사들의 활동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료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 ‘Republic of Korea’를 처음으로 사용한 임시정부 외교문서에 이어 일본이 독일에서 한인 유학생들의 조직적 독립운동을 사찰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주미 특파원 출신 언론인 모임인 한미클럽은 26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제임스 퍼슨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5월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당시 영국 총리 앞으로 전달한 외교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한 파리 평화회의에 임시정부를 대표해 파견된 김규식 선생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국호를 사용한 영문 독립 청원 서한을 1919년 5월 24일 로이드조지 총리 앞으로 전달했고, 영국 정부는 5월 30일 이를 접수했다.

청원 서한에는 국제사회가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정을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체제로 인정해 줄 것과 임정이 3·1운동 등 일본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결과로 창설됐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한미클럽이 발견한 다른 영국 외교문서에는 미 소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 선생이 1919년 4월 초 로이드조지 총리에게 전문을 보내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한민족의 독립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전문에 첨부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요청을 수용하지 말 것’을 건의하는 의견서도 첨부돼 있어 당시 냉혹한 국제질서를 보여 준다.
1925년 2월 주독 일본대사관이 독일 포츠담의 한인 모임 장소를 사찰한 내용을 담은 전문. 베를린 연합뉴스
1925년 2월 주독 일본대사관이 독일 포츠담의 한인 모임 장소를 사찰한 내용을 담은 전문.
베를린 연합뉴스
일본 측이 1920년대 독일에서 한인 유학생들의 조직적 독립운동을 사찰했다는 문서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독일 본대학 박희석 일본한국학과 교수는 1920년대 일본 외교전문 등을 분석한 결과 주독 일본대사관이 베를린 인근 소도시 포츠담의 건물에서 정기적으로 모인 한인들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극로·이미륵 선생이 주축이 된 재독 한인 유학생 조직 ‘유덕고려학우회’는 1923년 10월 23일 베를린에서 집회를 열고 일본의 한인 학살과 식민지배에 항거했는데 이 건물에서 사전 모의를 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독 일본대사가 1925년 일본 외무대신에게 발신한 전문에는 “베를린 근교 포츠담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에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지난번 관동대지진과 관련해 전단을 만드는 등 비밀작업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한편 일본 아사히신문은 3·1운동 때 국내에 배포됐던 독립선언서의 초판 원본이 일본 나가사키의 한 개인 주택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를 소장한 사람은 전직 교사인 사토 마사오(67)로 3·1운동 당시 평양에서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던 그의 할아버지가 당국의 감시를 뚫고 몰래 일본으로 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사히는 “한국에서도 원본은 박물관과 개인 등 8장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2019-02-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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