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패산 살인범”…피의자 자수에서 검거까지

“내가 사패산 살인범”…피의자 자수에서 검거까지

입력 2016-06-11 13:42
업데이트 2016-06-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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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기지 발휘…도주 우려 검거 순간까지 피의자와 통화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에서 50대 여성 등산객이 숨진 채 발견된 지 사흘째인 10일 밤.

폐쇄회로(CC)TV 분석과 DNA 대조에서 딱히 명확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형사들의 마음이 타들어 가던 오후 10시 55분께 의정부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선 한 남성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사패산 살인사건 범인이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의정부경찰서 한중근 강력4팀장은 경찰 생활 수십 년의 경험으로 장난 전화가 아닌 피의자의 자수임을 직감했다.

정모(45)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신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으며 현재 강원도 원주시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지난 8일 오전 7시 10분께 사패산 8부능선에서 55세 여성 등산객이 옷이 반쯤 벗겨진 상태로 숨진 채 발견돼 지역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사건의 피의자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한 팀장이 수화기 너머의 정씨와 통화를 이어가는 사이, 형사 5명으로 구성된 1개 강력팀이 원주시로 급파됐다.

의정부경찰서에서 정씨가 있는 곳까지는 빨리 가도 1시간30분은 걸리는 거리.

그 사이 정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도주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곧바로 기지가 발휘됐다. 형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통화를 계속하기로 한 것.

한 팀장은 중간중간 끊었다가 통화를 다시 하기를 반복, 정씨를 안정시켰다. 용의자의 심리를 아우르고 달래주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겉으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속은 긴박하기 그지없는 범죄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형사들이 원주시내 한 길가에 도착한 시각은 날이 바뀐 11일 오전 0시 33분.

이곳에 연고가 없는 정씨는 그때까지 자수 의사를 밝히는 통화를 하며 바람을 쏘이고 있었고 경찰은 정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어 정씨를 경찰서로 긴급 호송해 정씨가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고, 피해자 몸에 남아 있던 신발 발자국과 정씨의 것이 일치한다는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계 의견을 토대로 정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이 모든 과정이 토요일 해가 뜨기 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찰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한밤중 1차 조사로 지친 정씨를 우선 의정부경찰서 유치장에 입감했다.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집중적으로 추궁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정씨는 피해자와 모르는 사이로 확인됐다. 정씨는 의정부지역 사람도 아니며 살인사건 보도를 접하고 원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피해자의 지갑이 사라져 강도살인사건이 아니냐는 의심과 옷이 벗겨져 있다는 사실에 성폭행 시도 의혹도 일었다.

정씨는 전과가 있긴 하지만 성범죄나 강도 등 구속수감될 만한 중대 전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자수로 비교적 단시간에 검거가 이뤄졌지만, 범행 동기와 수법 등 경찰이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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