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5일 일하면 운좋은 것” 새벽 인력시장 일용직의 ‘절망’

“한달 5일 일하면 운좋은 것” 새벽 인력시장 일용직의 ‘절망’

입력 2016-06-03 09:46
업데이트 2016-06-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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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새벽 인력시장, 하루 70∼80명 중 5명만 일자리 구해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위험한 공사 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일용직의 현실이 드러났다.

하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하루 일거리를 찾는 구직자들이다.

지난 1일 오전 4시 30분 청주시 상당구 일자리종합지원센터 앞. 아직 센터의 불이 켜지지 않았는데도 일거리를 찾아 근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낡은 승용차를 타고 온 구직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왔다.

10명 남짓한 구직자 속에 옷차림이 좋은 40대 남성도 있었다.

이 남성은 일할 사람을 찾았다. “원래는 유료 직업소개소에 가는데, 오늘은 사람이 급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200원짜리 자동판매기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물고는 대기 중인 구직자들을 둘러봤다.

학교 보안 요원 3명을 구하러 왔다는 그는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더니 돌아갔다.

이 새벽 인력시장은 구인자와 구직자가 만나는 ‘인력 직거래 장터’다.

구직자들은 대개 유료 직업소개소(일명 ‘용역회사’)에서 떼는 1만원가량의 소개 수수료를 아끼려고 이 곳을 찾는다. 그러나 일을 잘 못 한다는 이유로 용역회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사람도 상당수다.

김진석(가명·32)씨도 그런 경우다.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줄곧 일용직으로 일했다.

2011년에는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국수 면발을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했다. 하청업체 일용직이었다. 매일 직업소개소에 내는 수수료 10%가 아깝긴 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다 보니 감수해야 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팍팍한 생활이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했다. 그 결과 청원구에 1천만원짜리 단칸방을 전세로 얻었다.

일하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장주는 동작이 굼뜨다는 이유로 1년여 만에 그를 해고했다. 일용직이었으니 부당 해고라고 주장할 힘이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겠다는 그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용역회사는 몸이 둔하다는 평가를 받은 김씨에게 더는 일자리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그가 일자리종합지원센터 앞 새벽 인력시장을 찾게 된 이유다.

한 유료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구직자가 일을 잘 못 한다는 소문이 돌면 다시 일거리를 얻기 힘들다”며 “일을 잘 못 하는 사람 명단을 인력소개소끼리 공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무료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찾을 겸 매일 새벽 이곳에 나오지만, 한 달에 5번 일거리를 찾기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 평균 70∼80명의 구직자가 이 인력시장을 찾는다. 그중 일터로 나가는 사람은 하루에 5~6명뿐이다.

매일 이곳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 성모(58)씨는 “전에는 유료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았다. 온종일 일해 10만원을 버는데 소개소에 1만원을 주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며 “일하는 날이 적더라도 새벽 인력시장을 찾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성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묘지 주변에 농약 뿌리는 일을 구했다. 일당은 10만원이다. 그는 “이런 일이 걸리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며 자리를 떴다.

오전 7시 30분 인력시장이 파장했다. 김씨는 결국 이날도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그는 “내일 다시 일을 구하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쓴웃음 지었다.

김두호 청주시일자리 종합지원센터장은 “일자리를 구하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 모이는 곳이 여기”라면서 “청주 외곽인 진천이나 음성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방법도 찾아주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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