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노조위원장·납품사까지 줄줄이…KT&G 총체적 비리

사장·노조위원장·납품사까지 줄줄이…KT&G 총체적 비리

입력 2016-05-25 08:25
업데이트 2016-05-2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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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납품사 관계자 무더기 재판…현직 사장 곧 기소민영화로 실적·규모 키웠지만 공기업 ‘구태’ 못 벗어나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 60%에 육박하는 KT&G가 지난해부터 진행된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비리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납품업체와 관련된 ‘뒷돈’은 다반사고, 사내 인사나 노사 관계를 두고도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업체들이 KT&G를 속여 부당이득을 챙긴 사례도 드러났다.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사장이 한 번 바뀐 데 이어 후임 사장마저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은 올해 초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는 민영진 전 사장이다. 민 전 사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해 7월 말 사임했다.

민 전 사장은 2009∼2012년 협력업체와 회사 내부 관계자, 해외 바이어 등으로부터 1억9천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챙긴 혐의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생산·연구개발(R&D) 부문장(부사장)으로 있던 2009년 10월 인사 청탁과 함께 이모 전 부사장에게서 4천만원을 받아 챙겼고, 이듬해 2월 말에는 사장 취임 직후 납품사 지위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협력업체에서 3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회사 본부장급 직원 5명과 러시아 출장을 가 중동의 담배 유통상으로부터 4천500만원대 스위스제 명품시계 ‘파텍 필립’ 1개와 670여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 5개를 챙겼다.

심지어 자녀 결혼식을 치른 뒤인 2012년 3월 KT&G와의 거래 물량 유지를 희망하던 다른 협력업체에서 ‘축의금’ 명목으로 3천만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파텍 필립 시계는 러시아 출장에 동행한 노조위원장 전모씨에게 건너갔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고 합의를 성사한 대가이자, 앞으로 노사관계 업무에서 사측 의견을 들어달라는 민 전 사장의 부탁이 담긴 시계였다.

전씨는 2003년부터 무려 ‘4선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시계 수수 외에 다른 비리가 함께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2009년∼2013년 말까지 건설회사 대표 김모씨 소개로 부동산 경매를 받아 시세차익 4억2천여만원을 챙긴 혐의다. 김씨는 KT&G 발주공사 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며 전씨에게 경매 물건을 소개하고 절차도 대신해줬다.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민 전 사장이 물러나고 백복인 사장이 지난해 10월 취임했지만, 백 사장 역시 검찰의 칼 끝을 피해가지 못했다.

백 사장은 아직 기소되지 않았으나, 그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광고대행업체 A사 대표 권모씨가 최근 추가 기소되면서 혐의가 대부분 드러난 상태다.

회사 자금 약 4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3월 기소됐던 권씨는 2011년 2월∼2012년 초 외국계 광고대행사 J사가 KT&G 관련 광고를 따내거나 계약을 연장하게 도와달라며 6차례에 걸쳐 5천500만원을 백 사장에게 건넨 혐의로 18일 추가 기소됐다.

J사의 부탁을 받은 권씨는 광고대행업체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앞둔 2010년 11월 백 사장을 만나 “이번에 내가 J사와 함께 PT에 참여한다.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부탁하고, 이후 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백 사장은 당시 마케팅실장, 본부장을 거치며 광고대행사 선정과 평가 등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사장은 3월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으면서 부당한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이후 검찰은 백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볼 때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해 구치소행은 일단 면했다.

이 외에 이모 전 부사장은 신탄진공장 생산실장이던 구모씨와 2007년 5월∼2013년 2월 납품단가를 유지해주고 협력업체 지정을 돕는 대가로 인쇄업체 S사로부터 6억3천6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씨는 천안인쇄창장이던 2007년 S사가 담뱃갑 인쇄방식을 바꾸면서 “인쇄방식 변경을 승인해주고 납품단가도 유지해주면 한 갑에 3원씩 주겠다”고 부탁하자 넘어갔다. 그는 납품단가 인하폭을 최대한 줄여주고 구씨와 함께 ‘커미션’을 챙겼다.

구씨는 제조기획부장으로 승진한 2011년부터 인쇄물량을 늘리고 납품기일을 연기해주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공짜 술’을 얻어먹기도 했다. 3년여간 마신 술값이 9천만원을 넘었다.

S사 법인카드를 넘겨받아 2천211만원을 긁는가 하면, 영업부장에게서 300만원어치 백화점 상품권과 498만원 상당의 명품 지갑도 받았다. S사 대표 한씨는 회삿돈 12억여원을 빼돌려 구씨 등에게 줄 뒷돈을 마련했다.

담배 재료인 팁페이퍼(필터와 담뱃잎을 결합하는 종이) 원지 수입가격을 장기간 속여 부당이득을 챙긴 업체 관계자들도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고, 담뱃갑 종이 수입을 두고도 인쇄재료 납품 및 종이 생산업체 간에 뒷돈이 오갔다.

법조계와 업계 등에서는 이렇게 총체적 비리가 드러난 KT&G를 두고 민영화 이후 규모는 성장했지만, 공기업 시절의 ‘구태’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년 가까이 KT&G 안팎의 각종 비리를 파헤친 검찰은 조만간 백 사장 등을 재판에 넘겨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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