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함께 부르지 못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

8년째 ‘함께 부르지 못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

입력 2016-05-16 11:06
수정 2016-05-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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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자율의사 존중, 합창 방식 유지·기념곡 지정 어려워”5·18단체·야당 “국론분열 조장, 청와대 회동 합의 어겼다” 반발

올해 제36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다 함께 부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참석자들이 다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보수단체 등의 반발로 8년째 공식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으로 불렸다.

그러나 작사자인 소설자 황석영씨의 행적과 함께 제목과 가사에 들어있는 ‘님’과 ‘새날’이 북한의 김일성과 사회주의혁명을 뜻한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로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부터 공연단의 합창으로 대체됐고 공식 식순에서도 빠졌다.

황씨는 1991년 북한 작가 리춘구와 함께 북측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배제가 결국 5·18 폄하와 왜곡 시도라며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촉구했다.

정부가 이런 요구를 일부 수용, 2011년부터는 합창단의 공연으로 본 행사에 배치됐지만 제창 요구는 더욱 높아졌다.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제창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념식에 불참, 최근 3년간 기념식이 ‘반쪽행사’로 전락했다.

지난해 기념식은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보훈처 행사와 5·18단체 및 시민단체가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개최한 별도의 기념식으로 열렸다.

34주년(2014년)에는 5·18 유족 등이 대규모 불참했고, 33주년(2013년)에는 5·18단체 회원들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식장 밖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올해 36주년 기념식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20대 총선으로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구하기로 하면서다.

13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 때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에 “국론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변하면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하지만 보훈처는 5·18 기념일을 이틀 앞둔 16일 참석자의 자율 의사를 존중해야한다며 식순에 포함하지만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념곡 지정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보훈처가 이처럼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야당과 5·18 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5·18단체는 “정부 기념일 지정 이후 10년 넘게 기념식 때마다 제창한 노래를 정부가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민의를 저버리고 국론을 분열하는 행위”라며 “보훈처는 선동적, 북한 찬양 노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여론이라 포장하고 못 부르게 할 것이 아니라 왜곡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청와대 회동을 통해 총선 민심을 반영, 국가적 사안에 대해 서로 협조하자, 야당 의견도 겸허히 반영하겠다는 합의정신을 확인했는데, 2∼3일도 안 지나서 야당 원내대표들이 강하게 부탁드리고 대통령도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제시한 님을 위한 행진곡 문제에 대해 보훈처가 제창을 못하겠다고 통보했다”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트위터 글에서 “이는 대통령께서 청와대 회동과 소통 협치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찢어버리는 일”이라며 항의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합창 결론을 재검토 요청하겠다며 뜻을 같이 했다.

합창은 합창단이 부를 때 여러 사람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제창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큰 소리로 동시에 노래를 하는 것이다.

행사 참석자들 입장에서는 합창과 제창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합창을 할 땐 영상 카메라가 합창단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제창을 하면 모든 참석자를 비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기념식 때면 참석자들의 입장에 따라 따라 부르거나, 부르지 않거나, 태극기만 흔드는 등 입창차를 나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5·18 기념식 때 악보를 보지 않고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족들과 합창한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5·18 기념식 때 자리에서 일어나 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처럼 이번 기념식에서도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려지기로 하면서 별도 기념식 개최 여부가 관심을 받고 있다.

일단 5·18 3단체(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는 정부 기념식을 보이콧하지 않고 참석하되 기념식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로 뜻을 모았다.

반면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올해 기념식을 어떻게 치를지를 논의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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