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스트레스로 자살 경찰관, 12년 만에 순직 인정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 경찰관, 12년 만에 순직 인정

입력 2016-02-10 10:28
업데이트 2016-02-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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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출근하지 않는 A씨를 찾으러 경기도 파주경찰서 3층 숙직실로 올라간 직원들은 숨진 그를 발견했다. 외상은 없었다. 33㎡(10평) 숙직실은 그가 아내, 어린 딸과 떨어져 1년 넘게 홀로 지낸 곳이었다.

A씨는 2003년 4월 경비교통과장으로 부임했다. 경정 승진 후 첫 부임지였다. 경비교통과장은 교통사고뿐 아니라 행사·시위 경비작전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다.

부임 전 미군 장갑차에 한국 여중생이 깔려 숨진 사건으로 미군 시설이 모인 파주는 각종 시위로 경비 업무가 급증했다. 한총련의 경기도 미군 훈련장 점거로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사임하는 일이 벌어지자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

A씨는 약 1년여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연인원 8만명을 동원한 500여 건의 미군 경비 작전을 모두 책임졌다. 상급기관 공문과 지시는 끊임없이 하달됐다.

그뿐 아니었다. 당시 파주는 수해 복구공사, 신도시 개발, LG필립스 LCD 단지 건설로 교통량이 증가해 교통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2004년 1∼5월 교통 사망사고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2.3% 늘었다.

모든 일이 경비교통과장인 자신의 책임이란 생각에 A씨는 괴로워했다. 말수가 적어지고 불면증,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근무일지에도 고통을 적었다. 하지만 경찰 생활에 오점이 될까 두려워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A씨는 내과 진단서로 병가를 내려다 실패했고, 보직 이동도 거부당했다. 그는 2004년 6월 파주 홍원연수원에서 무박 2일로 열린 남북 장성급 실무회담 경비업무를 마치고 며칠 뒤 숙직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족은 2006년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했지만 당국은 “자살은 순직으로 볼 수 없다”며 거부했다. 2013년 다시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했지만 “A씨의 죽음은 업무와 무관하다”며 재차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김수연 판사는 A씨의 부인이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순직을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고 10일 밝혔다.

A씨가 숨진 지 12년 만이다. 김 판사는 “근무환경, 업무내용, 근무일지 상의 기록에 비춰볼 때 A씨가 업무로 우울증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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