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vs 학문의 자유…미리보는 ‘제국의 위안부’ 재판

명예훼손 vs 학문의 자유…미리보는 ‘제국의 위안부’ 재판

입력 2016-01-19 09:40
업데이트 2016-01-19 09:4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0일 박유하 교수 첫 기일…민사와 판단 기준 달라 치열한 공방 예상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59) 세종대 교수의 형사재판이 20일 시작된다.

민사재판에서는 박 교수가 할머니 9명에게 총 9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결과가 곧바로 유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직접 박 교수를 처벌할지를 정하는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혐의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돼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형사재판은 민사 결과와 무관하게 박 교수의 행동을 새로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유죄면 5년 이하의 징역·10년 이하의 자격정지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교수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 제307조 제2항인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박 교수를 기소한 서울동부지검은 형이 더 무거운 형법 제309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적용도 검토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비방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비방 목적까지 인정되긴 어렵다고 봤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재판에 비춰보면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하현국 부장판사)는 우선 ▲ 박 교수의 저술이 ‘사실을 적시한 것’인지 ‘의견을 표명한 것’인지 판단한 뒤 ▲ 사실 적시로 보일 경우 그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구분한다.

허위로 보일 땐 ▲ 그 허위 사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 평가를 공공연하게 저하했는지를 따진다. 이 경우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좁혀지는지, 박 교수가 자신의 저술이 남들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인식했는지 등을 세부적으로 검토한다.

민사 판결문을 보면 이런 기준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민사 재판부는 책 32쪽이 위안부를 ‘가라유키상’(일본의 자발적 매춘부)의 후예라고 한 데 대해 “허위 사실이며 할머니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 사실 적시”라고 판시했다.

책 296쪽의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란 표현 역시 “본인 의사에 따라 대가를 받고 매춘업에 종사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명예훼손”이라고 인정했다. 형사 재판부가 같은 판단을 유지한다면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은 모두 충족된다.

◇ 명예훼손과 학문의 자유…어느 가치가 더 무겁나

그럼에도 박 교수를 유죄로 볼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허위사실을 진실로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학문의 자유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해 재판부가 인정하면 위법성이 조각(阻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법성의 조각이란 범죄 행위의 조건이 인정돼도 특별한 사유가 있어 위법하지 않다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박 교수는 민사재판에서 “나는 진실에 기초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선 이 부분이 형사재판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형사재판에서 ‘명예훼손’이란 범죄와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판단한 선행 판례가 거의 없다.

기댈 수 있는 선례가 없는 만큼 재판부는 ‘박 교수의 명예훼손이 학문의 자유를 넘어섰는지’, ‘이 사건에 국가가 개입해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은지’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의 유무죄는 결국 이 부분에 달린 셈이다.

재판장인 하현국(52)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0기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정치 댓글을 단 혐의로 기소된 국군사이버사령부 전 심리전 단장의 1심을 맡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해 주목받았다.

그는 최근 여자친구를 살해해 장롱에 시신을 유기한 ‘장롱시신’ 사건 살인범에게 징역 22년형을 내렸다. 고 신해철씨 집도의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재판도 맡고 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