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 ‘10년 충돌’… 교과서 개정 때마다 논란 왜

좌·우파 ‘10년 충돌’… 교과서 개정 때마다 논란 왜

입력 2011-09-27 00:00
업데이트 2011-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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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이념 따라 ‘역사 전쟁’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냐는 표현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전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다. 문제는 해당 교과서로 공부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항상 이 ‘교과서 전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차 근현대사 교과서 전쟁은 2002년 7월에 있었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도입된 고등학생용 근현대사 검정 결과가 문제였다.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을 통과한 금성출판사, 대한교과서, 두산,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4종의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교과서가 김영삼 정부는 비리와 대형사고로 얼룩진 정권으로, 김대중 정부는 개혁과 남북화해에 앞장선 정권으로 기술했다면서 편향 시비를 낳았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위원이 모두 사퇴했고 결국 한 달여 만에 교육부는 ‘객관적 기술’이라며 수정방향을 발표했다. 이듬해 초에는 교육부가 수정된 근현대사 교과서 4종을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4종의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교과서였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만드는 국정교과서와 달리 검정교과서는 당초부터 다양한 시각과 내용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만 일방적인 주장이나 학생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정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출판사와 저자의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에 따라 교과서가 나오고 이를 검정해 통과했다면 일선 학교장이 해당 교과서의 채택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검정교과서에 대한 논란으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정을 지시하고 다시 이를 배포하는 등 마치 국정교과서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고 이는 다시 근현대사 교과서의 정치적 논쟁의 빌미가 됐다. 때문에 2002년 이후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내내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근현대사 교과서가 반미·친북·반재벌 내용을 담고 있다.”고 공격했고 정부는 “친북, 좌파가 아니다.”라며 반격했다.

이 같은 논란에서 2005년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이 만들어졌고 2008년에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대안 교과서는 하지만 일제시대에 대한 긍정적 기술과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을 ‘좌파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또 다른 편향성 시비를 불러 왔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2차 교과서 전쟁이 일어났다. 2008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초·중·고 사회, 역사 교과서에 대해 337건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시정을 건의했다. 교과서 시정 요구도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는데 같은 해 9월까지 19곳의 정부 부처와 기관에서 교과서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시정을 요구한 곳은 상의, 국방부, 통일부 등 3곳이었다. 통일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고 국방부는 “이승만 정부는 독재정권을 유지했다.”는 표현을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에 화답해 김도연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그해 5월 외부 강연에서 “초·중·고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지적했고 교과부는 교과서 수정 검토에 착수했다. 이에 화답하듯 9월 보수성향인 당시 전국시·도교육감 협의회는 “이념 편향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대해 전국 역사교사모임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시·도교육감협의회 선언에 대한 반박 성명을 내놨다. 이명박 대통령도 10월 재향군인회 회장단 간담회에서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혀 논란에 동참했다.

이후 10월 국사편찬위원회는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교과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만든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권고안을 발표했다. 결국 최근의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이 2008년 교과서 전쟁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교과서 전쟁의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교과서에 담기는 내용은 논란이 없을 정도로 학술적 검증이 마무리된 것들이 실려야 한다. 적어도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이라면 적어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려서는 안 된다. 또 검정교과서의 경우 다양한 시각과 내용을 담자는 검정교과서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다양한 시각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투명하게 임명된 검정위원들이 이를 검정하면 되는 것이다. 검정교과서의 선택은 학교장이나 교과목 협의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수요자들이 선택하게 하면 된다. 일선 고교의 한 역사교사는 “교과서 전쟁의 근원적인 문제는 정치적인 시각에서 교과서를 재단하려 했다는 점”이라며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편향된 내용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2011-09-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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