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비극]이어지는 디지털성범죄, 국회는 ‘거북이 걸음’

[구하라 비극]이어지는 디지털성범죄, 국회는 ‘거북이 걸음’

김정화 기자
입력 2019-11-25 15:58
업데이트 2019-11-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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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비극 터질 때마다 반짝 관심
국회는 제 역할 못하고 법안만 쌓여
유승희안 지난해 2월 이후 심사 안돼
김수민·윤소하·김광수안도 깜깜무소식
전문가 “현 법률 최대 형량만 적용해도
‘솜방망이’ 논란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가수 구하라. 연합뉴스
가수 구하라. 연합뉴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하루 앞두고 걸그룹 카라 출신 가수 구하라씨가 24일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다.

구씨가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씨로부터 사생활 동영상 유포 협박에 시달려왔고 또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악성 댓글로 정신적인 큰 고통을 받으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자 디지털 성범죄 대책 및 처벌 강화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심은 그때뿐, 정작 이와 관련된 대책 법안을 만들어야 할 국회는 ‘거북이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 국회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승희, 김수민, 윤소하, 김광수 의원 등 각 당마다 관련법 발의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2017년 9월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은 해당 법에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의무를 규정하는 데 방점이 맞춰져 있다. 몰카 피해자가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신고하면 즉시 불법 동영상을 삭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하도록 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법안이지만 지난해 2월 법제사법위원회에 겨우 상정된 이후 심사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이 2018년 2월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법은 불법 몰카 등의 삭제롤 요청받은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삭제 등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 법은 그해 9월에야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깜깜 무소식이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지난 3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 역시 지난 7월 겨우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뒤 논의조차 진행된 적이 없다. 이 법안은 촬영 대상자를 괴롭히거나 협박할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이용해 음란 행위를 하거나 카메라 등을 이용해 촬영 또는 촬영물을 유포하면 각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또 촬영물 유포 등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에 대해 몰수·추징하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은 지난 9월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과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 법안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 외곽 지대에 있는 노래방 및 체육시설 등에 몰카 설치를 못하게 하고 적발되면 사업자 등록 취소 등 제재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지난 18일에야 각 소관 상임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상태다.
가수 구하라(28)씨가 24일 서울 청담동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전날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구하라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구하라(28)씨가 24일 서울 청담동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전날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구하라 인스타그램 캡처
▲각종 법안이 방치되는 가장 큰 원인은 ‘무관심’ 지적

디지털 성범죄 예방 법안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방지법, 스토킹 처벌법,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보안법안 등 수많은 여성 범죄 예방 법안들이 발의되지만 이처럼 방치되고 있는 데 대해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위원회 관계자는 “사회적 문제로 지적될 때 반짝 관심이 집중되지만 끝까지 관심이 이어지지 못하고 다른 현안에 묻혀버리곤 한다”며 “기껏 소관 상임위를 통과해 체계·자구 심사를 위한 법사위까지 올라가도 법사위가 워낙 정쟁이 심한 상임위이다 보니 여기서도 후순위로 밀리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다음달 1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끝나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을 심사하고 처리할 시간은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결국 국회의 무관심 속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만 끊임없이 고통 받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몰카 촬영자에 대한 처벌 강화 중심으로 법안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적극적 법안 심사를 강조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불법촬영 범죄는 피해자의 삶을 평생 갉아먹는 범죄인데도 국회 관련 상임위인 과방위에서는 심각성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웹하드 등 플랫폼 사업을 더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일부 의원이 불법촬영 근절 법안을 발의해도 법안 통과는 더디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현행법상 성폭력 처벌 대상에는 동의 없는 촬영과 유포만 포함되고, 영상을 이용한 협박은 형사법으로 처벌된다. 이 때문에 협박 피해자는 다른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제도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서 “촬영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영상으로 상대를 협박하는 것까지 성폭력으로 보고 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관련 범죄를 처벌할 때 현재 있는 법률의 최대 형량만 적용해도 ‘솜방망이’ 논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초범이거나 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면 정상 참작 해서 벌금이나 집행유예 판결 내리는 일이 반복되면 가해자들은 ‘별 거 아니구나’ 하는 학습효과를 얻게 된다”고 봤다.

서 변호사는 “특히 불법촬영 영상은 국내에서 너무 일상적으로 퍼져 있어 범죄라는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형사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세게 처벌해 불법촬영 영상 유포와 시청 모두 잘못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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