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텔을 아시나요’…北 주민의 남한드라마 시청법

‘노트텔을 아시나요’…北 주민의 남한드라마 시청법

입력 2016-12-29 09:47
수정 2016-12-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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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USB로 ‘몰래 시청’…“드라마 억양 따라하다 사라지기도” 북한 젊은이 사고·패션에 큰 영향

태영호 전 주(駐)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내 남한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를 언급하면서 주민들의 시청행태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철권통치’하에서도 노트텔이라는 조잡한 미디어기기를통해 남한드라마를 애청하고 드라마속 주인공을 따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투를 흉내 내다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지만 북한에서의 남한드라마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아 이미 북한 젊은이들의 삶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9일 탈북자 단체 등에 따르면 남한드라마는 대부분 중국에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CDR’(CD에 기록하는 장치)이나 ‘USB’에 담겨 북한에 몰래 반입돼 유통된다. 최신작일수록 암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

전지현과 김수현 주연으로 중화권에서 큰 히트를 한 ‘별에서 온 그대’의 경우 암시장에서 CDR 한 개에 한국 돈으로 1천원가량에 거래된다. 2만원이면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살 수 있다.

북한에서 ‘별그대’를 시청했다는 탈북자 A씨는 “암시장 브로커에 따라 CDR 한 개의 가격은 모두 다른데, 중국에서 드라마 한 편을 여러 개 영상으로 쪼개 가격을 더 올리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노트텔’(EVD 플레이어)은 남한드라마를 볼 수 있는 주요 수단이다. 작은 배터리만으로 USB에 담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단말기로, 북한 암시장에서 100달러 정도에 팔린다.

노트텔을 통한 남한드라마 시청이 성행하자 북한이 중국산 노트텔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는 전문매체의 보도도 있었다.

노트텔이 북한 주민의 소득으로는 고가여서 믿을만한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같이 보거나 돌려보는 경우가 많다.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외국에서 북한에 들어올 때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주는 선물이 USB에 담은 남한드라마”라며 “이를 가족과 지인들끼리 복사해서 돌려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의 ‘가을동화’·‘겨울연가’ 등 대표 한류 드라마를 비롯해 비교적 최근 히트작인 ‘별에서 온 그대’까지 남한드라마는 발표된 지 1년가량 지나면 북한에도 전파된다.

하지만 북한에서 남한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당국에 발각되면 ‘정치범’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끌려간다. 이 때문에 몰래 혼자서만 남한드라마를 즐기는 주민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탈북민 A씨는 “남한드라마에서 배운 억양을 학교에서 농담처럼 따라 한 친구의 가족 전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며 “‘아랫동네 말’(한국어)을 한다는 신고가 당국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드라마의 파급력은 북한 젊은이들의 패션·사고방식 등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드라마에 나온 거리의 화려한 불빛이나 깨끗한 집들은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심도 심어준다.

북한에서 ‘별에서 온 그대’를 인상 깊게 시청했다는 A씨는 배우 김수현이 연기한 ‘도민준’ 캐릭터에 푹 빠졌다고 회고했다. 차에 치일뻔한 천송이(전지현 분)에게 도민준이 날아가서 구해주는 장면에 감정 이입하고는 ‘도민준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고 한다.

특히 극 중 연예인으로 분한 전지현의 긴 웨이브 머리는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선 인기였다.

A씨는 “천송이 머리가 너무 예뻐서 집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직발기’(열을 이용해 머리를 펴는 기구)로 서로 머리를 만져줬다”며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봤을 때는 김태희를 따라 하느라 쌍꺼풀 수술까지 유행했다”고 말했다.

현인애 연구위원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드라마를 본 적 있는지 조사하면 ‘본 적 있다’는 응답이 해마다 늘어난다”며 “돈 있고 중국과 접촉이 가능한 상류층 젊은이들은 부모들이 말려도 본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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