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본 ‘수저 계급론’과 차별…“한국에 바란다”

외국인이 본 ‘수저 계급론’과 차별…“한국에 바란다”

입력 2016-05-12 17:00
업데이트 2016-05-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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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한국어 말하기 대회’ 참가자들의 애정 어린 조언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유학생에게는 ‘오!’라고 감탄하는 데 비해 아시아권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아!’라고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한 음절의 단어이지만 의미가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힘보보예브 박티요르·우즈베키스탄)

“세종대왕께서 한글이 이렇게 파괴되는 것을 알면 굉장히 속상해하실 것입니다.”(최선미·중국)

12일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크라운관에서 열린 ‘제19회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한국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들이 쏟아져나왔다.

올해 대회 주제는 ‘한국에 바란다!’와 ‘한국 문화 체험’.

참가자들은 무분별한 한국어 사용부터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 이른바 ‘수저 계급론’까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냈다.

이집트에서 온 유학생 사라 압둘하미드 씨는 요즘 화두로 부상한 ‘금수저’와 ‘흙수저’를 소재로 꺼냈다.

그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이집트의 젊은이로서 ‘삼포세대’란 말로 자조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에 공감한다”면서도 “아무리 ‘노오오력’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자신을 ‘흙수저’라고 자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는 말에 굴복하기보다는 그 현실에 도전하고 고군분투한다면 또 다른 삶의 의미가 생길 것”이라며 “흙수저가 사라지는 기적을 바란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해 박수를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라힘보보예브 박티요르 씨는 “한국 사람들이 서양권과 아시아권에서 온 외국인을 다르게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 서운했다”며 국적에 따른 차별을 꼬집었다.

그는 “차별 없이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한국 사회가 더 많은 아시아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출신 신후엇 씨는 “한국은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고 생각했는데 무슬림에 대해서는 좀 다른 것 같다”며 “한국이 앞으로 종교의 벽 없이 같이 손잡고 더 잘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독일에서 온 안나 붸르너 씨는 “한국인은 내가 독일인이라고 하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고 소개한 뒤 “서양 세계를 단순히 선망하며 롤모델로 삼지 말고 스스로 롤모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분별한 줄임말과 신조어 사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에서 온 고등학생 송은찬 양은 친구가 문화상품권의 줄임말로 쓴 ‘문상’이란 단어를 빈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알아들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줄임말로 한국어가 파괴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출신 대학생 최선미 씨는 “한국 친구들이 한글을 처음 그대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용하지 않아 적잖이 놀랐다”며 “위대하고 소중한 문화인 한글의 무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문화 차이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국내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는 미국 변호사 아리 어너시 씨는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점철된 자신의 회사 생활을 소개하며 “‘가족’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됐지만 회식은 일주일에 한 번만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인도에서 온 쿠날 쿠말 씨는 “한국에서 본 커플의 애정 행각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정말 난처하고 민망했다”면서도 “언젠가 나도 여자친구랑 커플티에 커플링을 하고 다정히 손잡고 캠퍼스를 거닐고 있을지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참가자들은 발표 내용에 맞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유학생 라하만 칸더커 아시꿀 씨는 한국에서 버스 여행을 하며 노래자랑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로이 킴의 ‘봄봄봄’을 능숙하게 불러 환호를 받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일마 비냠 비르하네 씨는 발표 전 ‘점심 식사는 다 하셨지요?’라고 한국식 인사를 건네 웃음을 자아냈다.

일부 참가자는 고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700여 명의 청중은 참가자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행사 중간 경희대 태권도 시범단의 축하 공연과 경품 추첨도 펼쳐져 분위기를 돋웠다.

이날 무대에 오른 본선 참가자 17명 가운데 대상은 라힘보보예브 박티요르 씨가 차지했고, 최우수상인 경희대학교 총장상과 연합뉴스 사장상은 안나 붸르너와 아리 어너시 씨에게 돌아갔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과 연합뉴스가 공동 주최한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을 위한 축제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1998년 시작돼 매년 1천 명 이상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로 성장했다. 올해는 43개국에서 1천325명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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