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초대 총리 故 황인성 전총리

문민정부 초대 총리 故 황인성 전총리

입력 2010-10-11 00:00
업데이트 2010-10-1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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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노환으로 별세한 황인성 전 국무총리는 군(軍) 출신이었지만 관계,정계,재계를 두루 섭렵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지난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6공화국과 문민정부를 잇는 과도기에 국민통합형 총리로 전격 기용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영남 정권임에도 전북 무주 출신의 그가 기용된 것은 지역화합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하는 노력형인데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평가됐기 때문이었다.

 육사 4기로 군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968년 예비역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중앙경리단장,경리학교 교장,국방부 재정국장을 거치는 등 군의 살림꾼 역할을 해왔다.‘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계수에 밝고 업무처리가 꼼꼼했다고 한다.

 황 전 총리는 예편 뒤인 1970년에 차관급인 무임소장관 보좌관으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이어 1973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보좌관으로 재직하다가 전북지사로 옮겨 5년 3개월간 도정에 전념했다.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교통부장관을 지냈으나 1979년 12.12 사태 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이후 국제관광공사 사장을 지내다가 6공 정권이 출범하면서 11,12대 국회의원,농림수산부 장관,산업개발연구원 고문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사장.회장을 역임하며 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1990년에는 항공전문지 ‘에비에이션 위크’가 선정한 세계 항공의 6대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무주.진안.장수에서 당선되면서 호남의 유력주자로 부상한 그는 이듬해 문민정부의 초대 총리를 맡으면서 관운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총리로서는 그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취임 10개월을 채우지 못한채 1993년 12월16일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우루과이 라운드 파동 속에서 전격 경질됐다.

 취임 일성으로 ‘깨끗한 정부 구현과 경제 회생’을 내세웠으나 독자적인 이미지 구축이나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쌀수입 개방에 따른 파고를 넘기지 못하고 퇴장한 것이다.

 그는 1994년 민자당 총재 상임고문을 맡으며 일시 정치권에 몸담았다가 199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직으로 재계로 돌아갔다.2002년부터는 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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