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파장은
“황장엽(87)씨 사망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10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사망이 가져올 대내외적 파장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자연사로 밝혀졌기 때문에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황 전 비서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2월 망명했을 때부터 이날 사망하기까지 한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활동에 부침이 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면서 황 전 비서와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0일 오후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여성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황 전 비서가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에 망명, 바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며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이 금지되는 등 그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물론 경찰까지 그의 신변 보호를 이유로 활동을 제약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황 전 비서가 강연을 하고 전문가들을 모아 특강을 하는 등 예전에 비해 활동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갔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차관을 지낸 이봉조 전 차관은 “황 전 비서와 정권과의 관계는 관점의 차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3년 황 전 비서가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잔 솔티 여사의 초청으로 방미, 미 하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다.”며 당시 황 전 비서의 방미에 관여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① 황장엽(왼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1997년 4월20일 측근인 김덕홍 전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과 함께 서울공항에 입국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② 황장엽(오른쪽) 전 비서가 2006년 3월26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관람한 뒤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③ 황장엽(오른쪽) 전 비서가 2007년 1월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동지회 신년하례식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④ 황장엽 전 비서가 지난 3월31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이 전 차관은 “당시 황 전 비서를 미국에 보내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그의 안전 문제였다.”며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쪽이 책임을 져야 할지, 경호는 어디서 해야 할지 등이 논란이 됐지만 이를 잘 조율해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을 도왔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이 정권의 영향으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암살 위협 등이 계속되면서 경호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황 전 비서에 대한 경호는 일반적으로 탈북·망명 후 1년이 지나면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되는 일반 탈북자와 달리 국정원에서 계속 관리하다가 6~7년 전쯤 경찰 전담팀으로 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 “세습소식에 마음 좋지 않았을 것”
이 전 차관은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지 오래되면서 더 이상 나올 얘기가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의 판단이나 분석은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든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황 전 비서와 정권과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대북 전문가들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안타깝다.”며 입을 모아 안타까워했다. 한 전문가는 “연세가 많아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애기를 들었다.”며 “북한의 독재정권을 바꾸고자 했는데 김정은이 세습한다는 소식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2010-10-11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