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④ 창조경제 중심에 ‘대학’이 있다-스위스·네덜란드 공대 르포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④ 창조경제 중심에 ‘대학’이 있다-스위스·네덜란드 공대 르포

입력 2013-07-29 00:00
업데이트 2013-07-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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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아이디어’도 아낌없는 투자… 대학 창업생존율 무려 90%

대학은 학생을 키운다. 하지만 졸업생 역시 사회적으로 공헌하면서 대학의 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취리히)는 졸업생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대학으로 꼽힌다. 취리히공대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모교이자 볼프강 파울리 등 지금까지 모두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로잔공대까지 합치면 수상자는 2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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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공대는 로잔의 로잔연방공과대(로잔 EPF)와 함께 스위스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으로 불린다. 스위스 교육시스템의 꼭대기에 두 대학이 있다. 16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모두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각종 대학평가에서 미국 일부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등 영어권 대학을 제외하면 최고의 대학 위치를 수십년간 지켜오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찾은 취리히공대는 다른 유럽대학처럼 도시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공부했고, 기념품이 전시된 본관을 제외하면 조그마한 건물마다 연구실이 몇 개씩 나뉘어 있었다. 취리히공대의 가장 큰 특징은 교수의 60%, 학생의 37%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로잔공대 역시 외국인 비중이 45%에 이른다. 두 대학에 소속된 사람들의 출신국가는 무려 120개국이 넘는다. 그러나 학부과정은 독어권인 취리히공대는 독일어로, 불어권인 로잔공대는 프랑스어로 진행된다. 박형규 취리히공대 환경학부 교수는 “대학원 이후부터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학부 과정에서는 스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역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모국어로 교육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교수와 연구원에게는 ‘출발이 쉬운’ 환경을 조성해 준다. 원하는 연구장비나 인력은 물론 연구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쉽게 지원받을 수 있다. 교수 초임은 18만 달러 수준이며 연구원들 역시 매달 5000~8000달러를 받는다. 세계 최고 대우다. 연방정부가 기본적인 인건비와 연구비를 보장하기 때문에 경제상황에 따른 예산 삭감 논란도 없다. 지난해 두 공대가 쓴 예산은 25억 스위스 프랑(약 2조 9711억원)에 이른다.

물론 연방공대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대가 없이 화수분처럼 계속될 리는 없다. 두 대학에서 나올 연구결과들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연방공대에서 개발된 기술의 상당수는 산업체에 이전되거나 창업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로잔공대의 경우 기술이전사무소에서 특허관리와 라이선스 등록을 담당하고, 산업협력센터에서 기업과 연구소를 연결하고 이를 관리해 준다. 창업하는 학생이나 교수는 1년간의 연구비를 보장해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노그랜트’ 제도가 있다. 특히 각 기업들이 입주한 ‘이노베이션 스퀘어’와 ‘사이언스 파크’는 스위스 경제의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노바티스, 시스코, 노키아, 로지텍, 네슬레, P&G 등 다국적기업들이 로잔공대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인 누구나 사용하는 ‘현대식 마우스’와 신재생에너지의 핵심인 ‘연료감응태양전지’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취리히공대에도 디즈니와 IBM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의 교통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세계각국 정부사업에도 참여한다. 연방공대는 이사회가 같고, 스위스의 국가 경쟁력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기초과학을 제외한 중점 응용 분야는 다르다. 중복투자를 막는 조치이다. 로잔공대는 마이크로 및 뇌 분야, 취리히공대는 에너지와 응용물리 분야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의 창업은 철저하게 상향식으로 진행된다. 대학은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 멘토를 연결시켜 주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박 교수는 “취리히공대는 1년에 한 번씩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해, 수상작들에 대해 실제 창업을 지원한다”면서 “학교에서 지원한 창업들의 경우 5년 뒤 생존율이 90%나 될 정도로 고르는 눈과 지원시스템이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와 함께 유럽의 대표 강소국으로 꼽히는 네덜란드 역시 공대가 사회발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네덜란드는 특히 ‘돈이 되는 연구’와 ‘황당한 아이디어’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인트호번공대에서 시작해 완성단계에 접어든 ‘실험실에서 키우는 육류’(배양육)나 델프트공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속 250㎞ 시내버스’ 등이 ‘네덜란드식 사고’의 산물이다. 2025년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마스 원’ 프로젝트 역시 네덜란드 공대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

델프트공대 관계자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던 기술이나 사고방식을 도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들은 기존 산업에도 접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철민 델프트공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어떻게든 학문을 육성해 산업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국가 차원에서 장애가 되는 규제를 모두 풀어 버린다”면서 “순수학문인 기초과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이 연구비지원의 1차적인 관문이 될 정도로 실용화, 산업화에 대한 원칙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는 학생이나 교수의 아이디어를 대학이 책임지고 지원하는 대신, 기업을 전면에 내세워 산업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꾀한다. 각 대학들은 네덜란드 대표기업과 손잡고 창업단지를 운영한다. 델프트공대의 경우 필립스의 출자로 ‘예스 델프트’라는 벤처단지를 2006년 설립했다. 아이디어가 있는 학생과 교수는 델프트공대에서 ‘기업가정신’과 ‘회사 설립 방법’에 대한 교육을 마치면 ‘예스 델프트’의 인큐베이션 센터에 지원할 수 있다. ‘예스 델프트’는 사무실을 거의 공짜로 임대해 주고 사업계획서 수립부터 실제 운영까지 도와준다. 기업과 대학은 물론 ‘벤처캐피털’이나 은행 등의 멘토단이 실시간으로 상담해 성공적인 안착을 지원한다. 3년이 지나면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한다.

취리히·로잔·델프트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2013-07-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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