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충남 서산 ‘가을 햇볕 구수한 백제의 미소’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충남 서산 ‘가을 햇볕 구수한 백제의 미소’

입력 2010-10-31 00:00
업데이트 2010-10-3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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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아침에 비운 밥공기가 쓸쓸해 보일 때가 있다. 식탁 위에 뒤집어져 놓인 숟가락만 봐도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가을에 찾아오는 고독이라는 진객 탓이다. 그럴 땐 뜬금없이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어떤 계획이나 목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서고 싶어진다. 일탈이라고 해도 좋겠다. 쳇바퀴 위를 구르는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라고 해도 좋겠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하나쯤은 가져도 좋을 만큼 우리는 최선을 다해 달려오지 않았나. 두려움 반, 기대 반을 안고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시간이라는 협궤열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집을 나서보자. 그곳에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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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 백제의 미소

가을 전어가 돌아왔다. 집 나간 며느리마저 돌아오게 했다는 전어 굽는 냄새가 서해안 포구마다 자욱하다. 서해안으로 발길을 잡은 건 순전히 전어와의 행복한 조우를 위해서다. 대천항의 전어 축제를 염두에 두고 나섰던 길에 갑자기 ‘백제의 미소’가 떠오른 건 온전히 가을 햇볕 탓이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그 은은한 미소가 식객의 발길마저 돌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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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에 위치한 암벽에 부조형식으로 조각된 마애삼존불상. 보는 각도에 따라, 햇볕의 방향에 따라 미소의 색채가 달라 보이는 마애삼존불상은 백제 문화의 진수라 할 만큼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얼굴 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속에서 당시 백제인의 온화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근엄함 속에 감춰진 지극히 서민적인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나마 근심을 내려놓게 만든다. 불상에 내려앉은 햇볕이 유독 달고 구수하다. 참나무 숲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기둥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근처 보원사지에서는 지금 대규모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조선시대 초 폐사하기까지 익산의 미륵사와 함께 찬란한 백제 불교의 문화를 꽃피우던 고찰이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석조가 땅속에 묻혀버린 옛 보원사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케 한다. 시간을 발굴하는 인부들의 손끝에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 묻혀 있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옥구슬 같다. 인부의 웃는 얼굴 자체가 마애삼존불이다. 저 백제의 미소를 닮았다. 가만 보니 길가의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백제의 미소가 서려 있는 것 같다. 길에도 온통 백제의 미소가 깔려 있다. 길이 포근하게 바퀴를 받아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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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목장·해미읍성, 환장할 가을 날

해미목장 가는 길에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제비들을 본 건 행운이었다. 다수결을 정하듯 전깃줄에 앉아 제비들은 사이좋게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제비들의 말은 날갯짓만큼이나 빠르다. 저 재잘거림을 서울 하늘에서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시에서 사라진 제비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파괴한 생태환경으로 인해 제비는 우리를 버렸다. 제비가 물어다줄 박씨는 이미 그 어디에도 없다.

해미목장 풀밭의 푸르름이 길을 가로막는다. 풀밭 사이로 난 목장길이 외로워 보이는 건 외길이기 때문이다. 외길은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우들의 눈망울 속에 푸른 하늘이 담긴다. 저 눈망울만큼만 순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냥 막연한 생각. 부질없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를 스치며 잠자리가 난다. 그래도 좋다. 오늘만큼은 맘껏 환상에 취해보는 거다. 환장할 가을이니까.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의 순교 성지인 해미읍성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왔다. 객사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힌다. 눈앞에 솟은 늙은 회화나무의 그늘이 짙다. 발자국소리마저 조신조신 다독인다. 목숨을 바쳐가며 신념을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온갖 고문과 박해 속에서도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이름 모를 영혼들이 저 회화나무에 깃들어 있으리라. 잎새들이 허공에 나부낀다. 잠시 옷깃을 여민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공유해 본다. 단말마는 짧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자에겐 상처와 오랜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평생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한다니… 숙연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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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사람도 열차도 더딘

장항선을 좇아 길을 재촉한다. 문득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나 돌아갈래!!!”를 외치며 열차를 몸으로 가로막던 바로 그 명장면. 길이 160.2km의 이 장항선이 바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철길이다. 처음엔 충남선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온양 사이가 개통되었다가 1931년 지금의 장항까지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1946년 5월 사설철도의 국유화정책으로 국유화되었고 1955년 장항선이라고 개칭하였다. 장항선은 일제시대 주변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는 병참선로 역할을 담당하던 굴욕적인 노선이었다. 현재는 철도 개량화사업(직선화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일부 구간은 복선으로 깔리고 낡은 驛舍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항선 열차는 참으로 느리다. 곧장 갈 수 있는데도 돌아간다. 더디게 굴러간다. 마치 충청도 사투리처럼 돌아 돌아간다.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빼다 닮은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돌아가면서도 기차는 말 한마디 없다. 단지 어둠 속을 묵묵히 헤쳐 나아갈 뿐이다. 공사 탓인지 옛 정취를 느낄만한 곳이 드물다. 그나마 간이역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이 청소역이다. 저 작고 아담한 플랫폼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기다릴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엔 떠나보냄의 아쉬움만 유독 짙게 남는다. 떠남은 기다림을 전제로 하는 것. 남겨진 자에게 기다림은 늘 고통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시간은 아름다운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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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해수욕장 노을과 마주 앉아 전어를 굽는다. 저 먼 바다 푸른 물결을 뒤집어쓴 전어가 연탄불 위에서 젖은 몸을 말린다. 전어가 익어갈수록 점점 노을빛을 띤다. 식객도 노을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풍경이 된다. 지금이 아니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풍미다. 전어 굽는 냄새가 사람들의 얼굴에 저절로 백제의 미소를 그린다.

글·사진_ 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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