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 그의 꿈] 남북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삶 그의 꿈] 남북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입력 2010-08-29 00:00
업데이트 2010-08-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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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이애란 박사

탈북자 출신 여성박사 1호인 이애란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종로에 있는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찾았다. 파고다 공원 옆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의 2층, 입구에 붙어 있는 ‘남북통일은 밥상에서부터’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갑자기 이루어진 인터뷰라서 사무실은 부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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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13년 전 백일도 안 된 아이를 업고 압록강을 건너온 이야기도, 호텔 청소부, 우유배달, 보험회사 영업, 식당 운영 등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애쓴 이야기도, 올 3월 미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 받은 이야기도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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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은 밥, 북한은 국수

남북한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분단 60년이 지나면서 남북한은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그중에서 특히 밥상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과연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그리고 밥상을 통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처음에는 북한의 배급제도에 대해 쓰려고 했어요. 북한이 먹을거리를 가지고 어떻게 정치화했는지를 쓰려고 했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쓰지는 못하고 결국은 ‘남한거주 북한이탈 주민의 식생활 행동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북의 밥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애란 박사에 의하면 남쪽의 음식은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 퓨전화 되어 있다. 또 일일생활권이 되다 보니 음식의 맛이 표준화되어 있다. 제주도 해물탕이나 서울 해물탕이나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양념을 지나치게 많이 써서 재료 고유의 맛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는 것이다. 맵고 짜고 달달하다. 거기에 비하면 북한의 음식은 각 지역의 특색이 그대로 살아 있고, 양념을 많이 쓰지 않아서 재료 고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밥상문화가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음식이 부족해서 대부분 가족이 식사를 같이한다. 외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 잡곡이 많다보니 잡곡을 이용한 국수를 많이 먹는 것도 특징이다.

거기에 비하면 남한은 외식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한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드물다. 필자만 해도 일주일에 3식구가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서너 번 정도밖에 안 된다. 국수를 좋아하긴 해도 국수를 먹으면 뭔가 부족한 듯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쪽에 와보니까 우리가 같은 한민족은 맞지만 전혀 다른 코드를 가진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질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에서는 우열이 없어요. 옛날엔 구황음식이 지금은 웰빙음식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난 남쪽 주민들에게 음식으로 다가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원을 만들고 북한음식을 가르쳐주면서 탈북자들의 취업도 돕고 북한음식도 널리 알리려고 한 거죠. 그렇게 되면 음식을 통해서 친근감도 생기고 한국음식의 세계화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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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덕보다 맛있는 평양칠향닭찜

이애란 박사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모른다고 한다. 통일비용이 많이 들 것을 겁내지만 사실 분단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다. 김정일에 대해 조선노동당에 대해 알 필요도 없다고 한다. 통일되면 그들은 자연히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 대목을 얘기할 때 이 박사의 목소리는 격렬해졌다.

“탈북자들 가운데 여성이 80%입니다. 그들이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도 취직과 연결되기 어려워요. 하지만 북한요리를 가르치면 취업에 도움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북한음식을 소개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간에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먹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제가 호텔조리학과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북한요리를 배우다 보니까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학생이 많아요.”

필자는 고향이 남쪽이라서 어릴 적 냉면이나 만두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평양냉면도 먹어보고 평양온반, 어북쟁반도 먹어봤다. 먹어보니 맛이 있어서 지금은 이들 음식을 꽤 즐기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정말 그렇다. 음식은 먹어봐야 관심이 가고 또 그 음식을 좋아하면 사랑이 생긴다.

“북한에 있을 때 저는 거의 매일 저녁 국수를 먹었어요. 옥수수 국수가 남한에는 맞아요. 먹어도 살이 안 찌니까 북한음식이 웰빙음식으로 각광받을 수 있습니다. 또 예로부터 평양기생이 유명한데 그러다 보니까 술안주 요리가 많이 발달했어요. 남쪽은 술안주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남한에는 없는 북한의 요리를 발굴해서 업그레이드하면 한식의 세계화에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비빔밥도 좋지만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또 비빔밥 한 그릇 놓고 어떻게 비싸게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인 의문도 든다.

한식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요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이 박사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시원하게 닭고기 찢어서 국수 말아서 먹는 초계탕도 좋을 것 같고 베이징덕보다 맛있는 평양칠향닭찜도 소개해 보고 싶단다. 그 밖에 평양온반도 괜찮고 돼지고기 사과찜, 숭어찜, 닭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도 많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프라이드치킨을 먹일 것이 아니라 닭가슴살과 채소를 양념해 넣은 닭다리찜을 먹이고, 햄 소시지가 아니라 야채와 생선, 고기 등을 이용한 순대를 먹게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말 북한요리를 개발하면 한식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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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시대의 음식 콩비지

“샐러드를 우리말로 하면 냉채예요. 서양 사람들은 우유나 마요네즈를 이용한 것이고 우리는 초간장이나 고추장 된장에다 무쳐서 먹었지요. 깨를 갈아서 무쳐 먹은 기록도 있고요. 저는 그래서 샐러드를 냉채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식에 대해서는 남북이 따로 없습니다. 음식을 가지고 통일을 논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요.”

이애란 박사는 적화통일 된다면 한강으로 달려가겠다고 한다. 북한에서 불바다를 얘기하면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너무나 처절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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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 박사는 음식을 가지고 통일을 얘기하고 있다. 정치이념이나 경제정책은 사라지고 변하지만 음식은 영원하지 않은가? 웰빙시대에 걸맞는 음식이 무엇인가 물어봤다.

“사람들이 콩비지를 잘 안 먹는데 잘 만들면 좋아요. 식이섬유도 많고. 김치를 섞으면 비지가 삭아서 맛이 덜하지요. 평안도 비지는 간을 하지 않고 돼지 등뼈에 채소 썰어놓고 콩을 갈아 넣는데 맛이 달아요. 콩비지를 잘 개발하면 외국인에게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지는 살이 안 찌고 단백질, 식이섬유가 많지요. 특히 당뇨병, 간질환에 좋아서 술 많이 마시는 사람,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콩을 갈아서 두부 빼내지 않고 만든 비지가 진짜 맛있는데, 중앙일보 뒤쪽에 있는 개성면옥을 추천하고 싶네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갑자기 운명론과 개척론 중 어떤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애란 박사만큼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줄 사람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운명은 주어진 것이지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운명은 없다고 봐요. 이 세상일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저는 되는 쪽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탈출한 것, 공부를 시작한 것, 모두 되는 쪽으로 걸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생긴 것이겠지요.”

글_ 김창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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