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축성 석성 ‘최초’ 확인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축성 석성 ‘최초’ 확인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입력 2019-10-08 09:58
업데이트 2019-10-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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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서울 진입 한강유역 전략적 요충지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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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테뫼식 석성 발굴 모습
행주산성 테뫼식 석성 발굴 모습 고양시 제공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한 ‘퇴뫼식 석축산성’으로 조사됐다.

김수현 고양시 학예연구사는 8일 “그동안 행주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포곡식 토축산성(包谷式 土築山城)으로 알려졌으나, 서기 7세기 때 정상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테뫼식 석축산성(山頂式 石築山城)인 사실이 최초 확인됐다”고 밝혔다.

석성의 규모는 지형에 따라 높이가 1.6~4.3m, 전체 길이는 450m에 달한다. 축조 시기도 기존에 알려진 것 보다 수백년 앞섰다.

고양시는 문화재청의 국비를 지원받아 지난 7월부터 한양문화재연구원을 통해 국가 사적 제56호인 행주산성 내 석성구역을 발굴조사해 왔다. 발굴 성과와 출토유물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이날 오후 2시 행주산성 정상에서 갖는다.

김씨에 따르면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3월에 실시한 7개 지점 시굴조사를 거쳐 석성의 범위와 축조 기법 등을 확인하기 위해 5개 지점을 구체적으로 선별해 진행했다. 조사 결과 석성은 장방형으로 자른 화강암을 이용해 지형이 낮은 부분부터 외벽을 쌓은 후 외벽이 내벽과 동일한 높이에 이르면 내부에 돌을 채우고 흙을 다져 내·외벽에 석성을 동시에 쌓는 기법이 사용했다. 석성은 축성 이후 한 차례 고쳐 쌓았으며, 동쪽 일부 석성에서는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흙을 다져서 보강한 토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발굴조사를 통해 한성백제기의 대옹편 및 신라시대의 토기, 선문 및 격자문 기와편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행주산성이 오랫동안 한강유역의 전략적 요충지 였음이 증명됐다.

김씨는 “이번 발굴조사로 행주산성의 유적 가치가 한층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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