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이지수 옮김/바다출판사/448쪽/1만 8000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과연 정말로 영화인가’란 의문을 평생 품고 산 이의 자서전이다. 1995년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 평가받은 ‘환상의 빛’으로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그는 자신을 ‘텔레비전 방언이 밴 변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감독으로 규정한다. 1987년부터 27년간 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며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다큐멘터리 연출 이력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 끝에 그는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자”면서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꼼꼼한 반성도 풀어낸다. ‘환상의 빛’은 “감독으로서 반성할 점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라며 “직접 열심히 결정하며 그린 300장의 그림 콘티에 스스로 얽매여 있었던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밝힌다. 반면 2016년 개봉한 ‘태풍이 지나가고’에는 무한 애정을 드러낸다. 영화는 한때 문학상을 받았지만 이제 건달 노릇이나 하는 료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혼한 아내, 아들과 함께 모처럼 저녁을 먹다가 마침 들이닥친 태풍 때문에 한 집에 묵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제가 매우 좋아했던 텔레비전 홈드라마에 대한 편애와 존경을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책은 작품들과 함께 성숙해 간 자신만의 인생론도 풀어낸다. 함께 일한 제작자, 연출가, 촬영감독, 배우들을 향한 존경과 우정을 담은 글은 걸출한 영화감독이기 전에, 그가 한 인간으로서 성실하고 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러 준다. 영화를 계속 찍기 위해 영화를 흑자로 만드는 법 등의 팁도 제법 많다. ‘영화제는 배움의 장’이라며 영화제 준비하는 방법 등을 꼼꼼하게 알려주는데, 후배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한 감독의 영화와 인생에 대한 성찰을 읽어가는 일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2020-10-30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