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존엄 사이/은유 지음/오월의 봄/240쪽/1만 3000원
국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간첩이기를’ 강요했다. 1986년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고 집으로 돌아오던 심진구씨는 안기부로 연행됐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엉터리 소설이 되었다. 팬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새로운 혐의들이 ‘발명’됐다. 심씨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에게 ‘여우’, ‘불독’, ‘독사’, ‘곰’이라고 짐승 이름을 붙여 기억했다. 그림은 심씨가 연필로 그린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과 네 명의 이름 없는 고문 기술자들이다. 1987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심씨는 26년 만인 2012년 1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가의 폭력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그는 2014년 11월 24일 췌장암으로 눈을 감았다.
오월의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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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