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그림·기호·종교·인물 창조 판타지 버무린 잘 만든 영화 보는 듯

기발한 그림·기호·종교·인물 창조 판타지 버무린 잘 만든 영화 보는 듯

입력 2011-07-16 00:00
업데이트 2011-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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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두 번째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 펴내

김중혁(40)의 서사(敍事)는 활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2000년 등단한 그의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은 활자의 틀 안에 머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림, 기호, 표 등이 다양하게 동원되어 이야기에 녹아들거나 이야기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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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
김중혁 작가
지난해 낸 첫 장편소설 ‘좀비들’도, 지난해 제1회 젊은작가상대상을 안겨준 단편 ‘1F/B1’도, 2009년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단편 ‘C1+y=:[8]:’ 등까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국가, 현실, 과학, 자연, 이성 등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재기발랄한 입담을 펼치고자 하는 그에게 고정된 소설의 형식은 갑갑하기만 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미스터 모노레일’(문학동네 펴냄) 또한 유쾌하고 발랄한 아이디어들을 곳곳에 깔아놓았다. 그럴싸한 종교와 교리, 인물 등을 만들어내고, 주사위를 굴리는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분식집 메뉴판, 미장원 요금표, 벨기에 섬유회사 ‘하이-파이버·High-fib(v)er’ 마크 등 기발한 것들이 이어진다. 직접 그린 그림과 표가 곳곳에 등장함은 물론이다. 여기에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 유럽 도시 곳곳을 누비는 모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같은 판타지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버무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스물일곱살 ‘모노’는 문득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주일 만에 게임을 개발해낸다. 그리고 수천개 이상의 변수를 가진 복잡하고도 흥미진진한 이 게임은 전 세계 사람들을 휘어잡고 그와 동업자 친구 ‘고우창’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안겨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우창의 아버지이자 평생 무위도식하던 지식 룸펜 ‘고갑수’가 회사 돈 5억원을 들고 사라진다. 알고 보니 그는 ‘볼스 무브먼트’라는, 동그란 구(球)로 우주를 관장하는 ‘우주자’의 힘을 믿는 사이비 종교의 핵심 간부 ‘핀볼 성자’였다. 그가 ‘볼교’의 본산인 벨기에로 떠난 것이다.

한편 ‘모노레일’ 게임 마니아들인 모노와 그의 친구들은 고갑수를 구하기 위해, 혹은 인생을 즐기기 위해, 서로 다른 이유로 유럽 여러 도시를 스펙터클하게 헤맨다. 이들은 정체를 쉬 드러내지 않는 우연과 운명의 갈림길마다 어김없이 정해진 길이 아닌 낯선 선택을 하며 운명 속에 자신을 내던진다. 운명을 얘기하지만 자유로운 영혼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순간의 삶을 즐긴다.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이란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주사위를 던지고, 자신은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만큼 이동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주사위가 게임 속 멋진 지름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168쪽)

하지만 김중혁은 소설 속 누군가의 입을 빌려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우주자는 우주를 우연에 맡겨두지 않는다. 우리 역시 볼스 무브먼트를 우연의 힘에 맡겨둘 수는 없다.’(222쪽)라고. 그리고 그들은 종교 개혁-을 가장한 박진감 넘치는 어드벤처-를 감행한다. 권태로움 그 자체였던 고갑수가 난데없이 그 중심에서 볼교의 최고 지도자 ‘유니볼 성자’를 납치하는 초절정 영웅적 행위를 선보이고, 우여곡절 끝에 고갑수는 순교하고 다른 친구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작품은 이렇듯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를 연상시킨다. ‘볼스 무브먼트’, ‘헬로 모노레일’, 볼교 예언서를 썼다는 ‘크리스티나 보네티로 교수’ 등의 단어를 검색해봤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충분히 황당한 소설임에도 군데군데 각주까지 달아가며 볼교 교리, 모노레일 게임 방법 등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설명하고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든 작가 탓이라고 우겨 본다.

김중혁은 책 끝장에 ‘모두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런던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외의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라고 사족 같은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남겼다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주사위 게임의 기본 법칙”이라는 말(65쪽)도 가짜인가. 확인할 길이 없다. 뻔한 허구임에도 솔깃하게 만드는 젊은 이야기꾼의 능청스러운 입담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7-1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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