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직전까지 이윤기가 매달린 번역작

별세 직전까지 이윤기가 매달린 번역작

입력 2010-12-18 00:00
업데이트 2010-12-1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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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섬앤섬 펴냄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고(故) 이윤기가 마지막으로 번역한 ‘천로역정’(섬앤섬 펴냄)이 출간됐다. 모범적인 번역으로 ‘번역문학계의 개척자’로 불리는 고인은 지난 8월 별세하기 직전까지 이 작품에 매달렸다.

‘천로역정’은 영국의 작가이자 목사였던 존 버니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우화소설이다. 기독교도로서 거듭나기 위한 투쟁, 세속적인 삶과의 갈등을 이겨내기 위한 기독교인의 일생을 그린 ‘영적인 자서전’으로 불린다.

청교도혁명 당시 국교인 성공회에 반대하며 청교도 의용군으로 싸우기도 했던 버니언은 청교도주의 복음 전파를 금지하는 법을 어겨 감옥살이를 하고 이 책을 펴냈다.

이윤기는 책의 제목에 대해 “원래 제목 그대로 번역하면 ‘순례자의 여정’에 가깝지만, ‘천로역정’으로 굳어진 것은 순례자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내세의 하늘나라(천국)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하늘나라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우리 시대에 걸맞게 쉽고, 또 그 제목의 의미와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데 요긴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1678년 펴낸 1부는 주인공 ‘기독자’가 안락한 생활을 뿌리치고 온갖 모험과 시련을 헤치고 ‘거룩한 성’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1부를 쓰고 나서 6년 뒤인 1684년 별개의 작품으로 쓴 2부는 남편 기독자가 거룩한 성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안 아내가 네 아들을 데리고 떠난 순례의 여정을 담았다.

이윤기는 보편적인 신앙의 편력을 다룬 서사 종교소설인 1권과 달리 2권에서는 저자의 시선이 종파 간의 통혼 문제, 교인들 사이의 응집력 등으로 옮겨간다고 지적했다.

두권의 시선이 이렇게 다른 것은 버니언이 2권을 쓸 당시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리면서 사회의 정의와 죄악의 속성에 눈을 댈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천로역정’은 삶의 문제를 성서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종교나 지역 장벽을 넘어 읽히는 고전이다. 이윤기는 “수많은 인용구와 관용구, 평범한 구어체 문장을 예술적으로 완성한 버니언의 문학은 후세의 문학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됐다.”고 해설했다.

이어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른 교인이 있으면 불기둥에 매다는 것까지 망설이지 않던 시대에 버니언은 명백히 독단적인 자신의 의견을 우화로 빚어낸 용감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도였고, 사람들이 말세의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던 시대, 교조적인 교리와 경직된 논리가 문필가의 혀끝과 붓끝을 지배하던 그 시대에 그는 피가 통하는 인간의 무리를 통하여 자신의 열정을 창조적으로 드러낸, 분명히 위대한 서사 시인이었다.”고 평가했다. 1만 4000원.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10-12-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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