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작가 되니 추근거림 사라지더라”

“편집위원·작가 되니 추근거림 사라지더라”

입력 2016-12-06 16:30
업데이트 2016-12-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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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문단 성폭력’ 좌담…“권력 어떻게 사용할지 배워야”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이 되고 나니, 그 모든 추근거림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 차이가 꽤 크더라고요.”(강지희 문학동네 편집위원)

“과장된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그릴 때 여성 창작자들이 자기 검열을 지독히 하는 것에 비해 남성 창작자들은 하지 않는 게 문제적이란 생각이 듭니다.”(정세랑 작가)

‘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을 주제로 문학동네가 마련한 좌담에서 나온 얘기다. 문학동네는 6일 펴낸 계간지 겨울호(통권 89호)에서 강지희 편집위원과 정세랑 작가,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 등 문단 안팎 인사들의 좌담을 싣고 최근 잇따른 문인 성폭력 폭로 현상을 들여다봤다.

참석자들은 문인 성폭력이 문단 내 권력관계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지희 편집위원뿐 아니라 정세랑 작가도 “편집자로 일할 때 업무에 방해될 만큼 자주 겪어야 했던 불쾌한 경험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문학상을 받으니 뚝 끊기더라”며 “차등을 두고 더 약한 타깃을 고르는 게 굉장히 비열하게 느껴진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일부 문인이 ‘낭만적 예술가’의 환상에 빠진 탓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오찬호 박사는 “경계를 허물고 구속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오독이 있다”며 “지금은 죄가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본성과 자유로움에 충실한, 폭력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스러운’ 행위로 가해자들이 인식한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 편집위원은 하필 이 시점에, 문단에서 유독 성폭력 폭로가 쏟아져 나온 원인을 문단 내부에서 찾았다.

그는 “어떤 사회든 구조의 힘이 세면 소수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어렵다. 문학계에서는 작년 여름에 표절 사태가 터지면서 이미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다양한 담론들이 형성되면서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공유됐다”며 “무엇보다 낭만주의적 작가론이 한번 깨져나가는 경험을 했던 것이 이번 사건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행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김신현경 박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문인들이 사과문을 쓰는 수준을 넘어 관련 법률에 따라 공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빨리 사과문을 공개하고 사라지는 게 오히려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사는 “도둑질을 했다거나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며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니라 법적 절차에 따라서 처벌을 받으면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세랑 작가는 “강의하는 사람, 등단을 결정하는 사람, 지면을 배분하는 사람이 다 달라야 궁극적인 위계질서 완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문학계 사람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새롭게 배워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출판계약에 성폭력 방지 조항을 집어넣거나 문학출판계의 각 집단이 스스로 내규를 만드는 등의 자정 방안을 제안했다.

문단에서는 10월 말부터 줄잡아 10여 명의 문인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고 현재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작가 모임인 ‘페미라이터’는 최근 작가를 포함한 문학·출판계 종사자 671명에게서 성폭력 방지 서약을 받고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문학과지성사와 민음사는 문제 시인들의 시집을 일부 출고정지 또는 절판시켰다.

한국작가회의는 공지영 작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를 꾸렸다.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문제 시인들에게 제명과 자격정지 등 조처를 할 계획이다. 성추문이 불거진 시인 중 한국작가회의 소속은 모두 8명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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