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살아남았다”...우리는 강간 문화 생존자

“우연히 살아남았다”...우리는 강간 문화 생존자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6-06-03 10:55
업데이트 2016-06-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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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불인정이 여성혐오…추모열기는 분노의 표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저자인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3일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추모 메시지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우에노 교수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 전체에 여성을 강간하는 듯한 언동이 넘치기 때문에 거기서 살아남은 것, 우연히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레이프 컬처의 서바이버(강간 문화의 생존자)”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성혐오를 인정하지 않고 ‘남성혐오도 문제’라며 반박하는 부류에 대해 “그 자체가 여성 혐오”라며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두지 않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에노 교수는 저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호모소셜·호모포비아·여성혐오라는 세가지 요소로 젠더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호모소셜은 ‘너를 남자로 인정한다’는 남성 사이의 유대를 의미한다. 이런 유대관계는 남성답지 못하거나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 즉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로 유지된다.

그는 “세 가지 개념으로 여러가지 현상을 편하게 설명할 수 있다”며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두면서 사회를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우에노 교수는 또 “여성혐오가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에 만연해 있다”며 2008년 6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사건을 예로 들었다. 휴일 대낮 7명을 살해한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는 범행 전 인터넷에 열등감과 좌절감을 토로하며 ‘만일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나는 나의 직업을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기만 한다면, 내가 남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텐데’라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며 “여성혐오, 젠더 관점에서 비대칭적 관계가 이미 정립돼 신체에 탑재돼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관계를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여성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성에게 끌린다. 젊은 남녀 사이에 남성의 지배·집착·성욕을 사랑으로 착각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관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에노 교수는 국민 통합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 즉 혐한(嫌韓)·혐중(嫌中)”이라며 “보수주의자들은 항상 젠더 차별과 민족주의를 결합한 형태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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