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는 공간 아닌 시 얻어가는 공간으로”

“시 사는 공간 아닌 시 얻어가는 공간으로”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6-05-30 16:22
수정 2016-05-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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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시집서점 차린 젊은 시인 유희경

 만남과 헤어짐, 도착과 떠남이 매일 교차하는 서울 신촌 기차역 앞에 ‘시의 공간’이 움튼다. 시단의 현재를 이끄는 젊은 시인 유희경(36)이 차리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다.

 그가 시집 서점을 낸다는 소식은 문인들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미 소문이 왁자하다. 새달 7일 오픈에 앞서 2일 열리는 김소연 시인의 시 낭독회는 유료지만 이미 매진이다. ‘어쩌자고 시집 서점을 차렸냐’는 질문에 시인은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며 “어쩌자고”란 말을 되뇌었다. 착상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편집자 생활을 9년 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 순 없고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걸 해보자 했더니 할 줄 아는 게 시밖에 없더라구요. 박준 시인에게 처음 얘기했더니 ‘나는 시집 리어카를 해보고 싶었다’며 웃더라고요. ‘상업적으로 오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성실히 잘 가꾸면 형한테 많은 게 남을 것 같다’고요. 빚만 남지는 않겠죠.”(웃음)

 문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용기 있는 결정”, “편이 되어주겠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시인들이 좋다고 해서 용기는 많이 얻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인들이란 돈 셈을 못 하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더라구요(웃음). 지금 워낙 관심이 많아서 한두 달은 잘될 것 같은데 저는 2년 정도 봐요. 회의적인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붓겠다는 각오죠. 시를 ‘사는’ 공간이 아니라 시를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바람이에요. 안 망할 순 없을 것 같고(웃음) 신촌 향레코드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으면 해요.”

 ‘위트 앤 시니컬’이란 서점 이름은 그가 대표로 있는 시 잡지 ‘눈치우기’ 멤버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제가 발음이 좋지 않아요. 한번은 제가 ‘위트 있는 시’라고 말했더니 하재연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이 뭐야’라고 되물어서 우리끼리 깔깔대다 헤어졌죠. 명사와 형용사의 조합이라 문법적으로는 오류예요. 하지만 모든 시가 위트(재치)와 시니컬(냉소적)이라는 성정을 갖고 있잖아요. 마음에 들었죠.”

 요즘 일부 시집이 잘 팔리는 추세를 미리 짚은 것일까. 시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형 서점에 가면 팔리는 시집만 눈에 띄는 매대에 나와 있고 오히려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 권수는 대폭 줄었다”면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복합문화공간 카페 파스텔 안에 자리잡은 3평짜리 서점에는 2000여권의 시집이 채워진다. 매대의 주제는 외국시집 특별전, 시인의 첫 시집 등 늘 생동감 있게 바뀔 예정이다.

 감각 있는 시인이자 눈 밝은 편집자가 그려주는 시의 지도, 시의 무늬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젊은 시인들의 시집만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읽었던 시는 선배들의 시거든요. 그래서 ‘시의 계보’를 큐레이팅 해보려고요. 나만 알고 있고 숨겨놓고 싶은 보석 같은 시집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같은 대형 문학 출판사뿐 아니라 작은 출판사들이 펴낸 희소한 외국 시집들, 제대로 발굴 안 되거나 지금은 팬덤이 사그라져 찾지 않는 좋은 시집들?. 절판된 것도 많아서 중고책방을 열심히 뒤질 생각이에요. 제일 빨리 들여놓고 싶은 건 절판된 성석제 소설가의 시집 2권이에요. 매대를 보면 저뿐 아니라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들을 짚어볼 수 있을 거예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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