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한국천주교 세번째 시복식…”한국인 큰 기쁨의 날”

<교황방한> 한국천주교 세번째 시복식…”한국인 큰 기쁨의 날”

입력 2014-08-16 00:00
업데이트 2014-08-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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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직접 거행하는 것은 이례적…앞서 두번 시복식은 로마에서소박하게 진행…한복 입은 성모상·태극 무늬 의자 놓여

“사도의 권위로 공경하올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고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중 최대 하이라이트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16일 오전 10시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 선언을 하자 감격에 겨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을 직접 시복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통상 시복미사는 바티칸에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거행해왔다.

이날 순교자 124위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열리는 시복식이다. 앞서 일제 강점기인 1925년(79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24위)에 열린 시복식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이때 복자품에 오른 순교자 103위는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미사 집전에 앞서 한국 천주교 최대 순교 성지인 서소문 성지에 들러 헌화와 기도를 하고 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30분간의 카퍼레이드를 통해 일반 신자들과 만난 뒤 광화문 광장 북쪽 끝 광화문 앞에 설치된 제대에 올랐다.

공동 집전자인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양옆에 자리잡았다.

교황을 비롯한 주교단과 사제단은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제의와 영대(목에서 무릎까지 걸치는 띠)를 입었다.

교황이 제대 앞에서 성호를 긋고 죄를 반성하는 참회 예식과 자비송을 바친 뒤 시복 예식이 시작됐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복자 반열에 올려주시기를 청원합니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가 시복 청원을 한 뒤 124위 순교자 시복을 위한 로마 주재 청원인으로 일해 온 김종수 신부가 순교자 124위의 약전(略傳·소개문)을 낭독했다.

김 신부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한국 교회의 시작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살아있는 초석”이라며 “이분들의 순교로 초기 한국 교회의 복음 정신은 더욱 단단히 뿌리내렸다”며 이들을 소개했다.

이어 교황은 라틴어로 한국의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선포하는 선언문을 천천히 또박또박 낭독했다.

역사적인 교황의 시복 선언에 이어 124위 복자화가 공개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걸린 가로 3m, 세로 2m의 복자화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은 천주교 신자인 김형주 화백의 작품으로, 신약성경의 요한 묵시록을 모티브로 삼아 순교자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후에는 본기도, 말씀 전례, 미사 강론, 신앙고백, 신자들의 기도(보편지향기도), 성찬 전례 등 일반 미사와 유사하게 진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을 통해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면서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고 순교의 역사를 평가했다.

이날 행사는 다른 어느 미사보다 소박하고 간소하게 진행됐다. 봉헌예식도 전례에 필요한 것 외에는 다른 봉헌은 일절 하지 않았다.

성찬 전례에서는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면서 20년 동안 매일 첫 매상을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 온 강지형·김향신 씨 가족이 빵과 포도주를 예물로 바쳤다.

한국에서 열리는 시복미사인 만큼 한국의 문화와 전통도 반영됐다.

제대에는 복건을 쓴 아기예수와 비녀를 꽂은 성모가 한복 차림으로 인자한 미소를 띤 ‘한국사도의 모후상’이 놓여 눈길을 끌었다. 어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한국관구 수녀가 조각했다.

교황이 앉는 의자에는 태극기에 들어가 있는 ‘건·곤·감·리’ 4괘가 새겨졌다.

염수정 추기경은 감사인사를 통해 “이번 시복식을 통해 한국 교회가 우리사회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복음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평화방송TV와 라디오, KBS TV를 통해 방송과 온라인으로 생중계됐으며, CNN 등 외신도 현장을 중계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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