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책임 피했던 일왕 ‘진주만 공습 결의’ 담긴 기록 나왔다

전쟁 책임 피했던 일왕 ‘진주만 공습 결의’ 담긴 기록 나왔다

김진아 기자
김진아 기자
입력 2021-12-05 20:56
업데이트 2021-12-06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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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궁내청 고위직의 일기 공개

평화 원했다며 기소 피했던 ‘히로히토’

“바짝 다가온 시기 이미 각오한 모습”
알려진 것과 달리 전쟁 시작에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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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인 1945년 9월 히로히토(오른쪽) 일왕이 일본 도쿄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찾아 맥아더 미군 총사령관과 만난 모습. 히로시마 AFP 연합뉴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인 1945년 9월 히로히토(오른쪽) 일왕이 일본 도쿄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찾아 맥아더 미군 총사령관과 만난 모습.
히로시마 AFP 연합뉴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전인 1941년 10~11월 히로히토(1901~1989) 당시 일왕이 전쟁 개시를 각오하는 태도를 측근에게 드러낸 기록이 공개됐다. 전쟁을 실시하는 데 신중했다며 추후 기소되지 않은 히로히토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5일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 고위직인 시종장을 지낸 햐쿠타케 사부로(1872~1963)가 이 같은 내용을 적은 일기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는 햐쿠타케의 유족이 도쿄대에 자료 등을 기탁하면서 알려졌다.

햐쿠타케는 10월 13일 일기에 “바짝 다가온 시기에 대해 이미 각오하신 것 같은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히로히토를 면담한 마쓰다이라 쓰네오 궁내대신으로부터 들었다고 썼다.

히로히토의 마음이 앞서가는 것을 우려한 기도 고이치 내대신이 “가끔 선행하는 것을 만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도 기록했다.

또 기도는 히로히토가 “개전을 결의하는 경우 전쟁 종결 수단을 처음부터 연구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어 햐쿠타케는 11월 20일 일기에서 “폐하의 결의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는 기도의 발언을 적기도 했다. 패전 후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은 연합국 측이 주도한 도쿄재판으로 처벌받았다. 히로히토는 개전에 신중했고 평화를 원했지만 “정부나 군부의 진언으로 인해 마지못해 동의하게 됐다”며 기소되지 않았다.

자다니 세이이치 시가쿠칸대 교수는 “히로히토의 자세가 개전을 향해 경도되고 있는 것에 대한 측근의 우려가 드러난 상세한 기록은 ‘쇼와텐노 실록’을 포함해 종래의 사료에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햐쿠타케의 일기가 진주만 공습을 결정한 고위 관계자들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는 설명이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 jin@seoul.co.kr
2021-12-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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