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꽤 깊이 논의”… 11·12월 잇단 정상회담서 합의 시도
일본과 러시아 관계가 바짝 가까워지고 있다.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 해결과 극동개발 등 경협이란 카드를 서로 보이면서 2차대전 이후 현안인 ‘평화조약’까지 달려갈 기세다.●푸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 힘 실어
4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지난 2일 이뤄진 일·러 정상회담에 대해 양측이 영토교섭 가속화를 확인했다면서 북방영토 반환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화조약(체결 교섭)에 관해 둘이서만 꽤 깊이 논의했다”면서 북방영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이례적으로 단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일본의 에너지 분야 등 8개 경협안에 “적확한 방안”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푸틴은 2일 동방경제포럼 연설에서도 “북방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아베 총리와) 일치한다”며 기대를 높였다. 또 “어느 한쪽이 졌다고 느끼면 안 된다”며 “역사적으로 그런 해결 사례는 적지만 그런 사례를 우리가 만들어 내기를 강력 희망한다”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시코탄도·하보마이 먼저 이양 가능성
양측은 오는 11월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활용해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오는 12월 15일에는 푸틴이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을 방문해 후속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야마구치 회담은 평화조약 체결 문제 등 영토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평화조약 합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합의가 이뤄지면 쿠릴 4개 섬 중 시코탄도(島)와 하보마이 두 개 섬을 먼저 일본에 넘겨주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일·러 양국은 관계 개선에 신중한 자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미국의 정권교체기 등 공백기를 맞아 현안을 조율하면서 성과를 보겠다는 자세다. 미국은 내년 2월 새 대통령 취임 뒤에도 외교안보팀이 가동되려면 청문회·인준 절차 등을 거쳐야 돼 반년 이상 대외 정책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푸틴은 “대대적인 대러 경제협력을 통해 신뢰관계를 높여 북방영토 협상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겠다”는 아베의 포석을 수용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일본을 제재 대열에서 이탈시켜 경제적 곤경과 외교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日, 러엔 에너지 등 8개 경협안 ‘당근’
아베 총리는 러·일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분야 등 8개항의 경협안을 제안했다. 대미 관계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도 대러 관계를 진전시켜 영토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하고 극동개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미국 정권교체기를 활용한 셈이다.
일·러는 매년 한 차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일 정상회담 개최 등에도 의견을 모았다. 양측은 1956년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 체결 후 시코탄, 하보마이 두 섬을 인도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2016-09-05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