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말뒤집기’ 본선 영향 주목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세금 및 최저시급 공약을 번복한 데 이어 이번에는 ‘모든 무슬림 입국금지’ 공약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트럼프는 11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라디오 ‘킬미드와 친구들’ 인터뷰에서 “무슬림 입국금지는 일시적인 것”이라면서 “이것은 아직 공식 요청되지 않은 사안이고 누구도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 그렇게 해 보자’는 그저 제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그간의 강경 기조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발(發) 테러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던 지난해 12월 “미국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지하드(이슬람 성전) 신봉자들의 참혹한 공격의 희생자가 될 수 없다. 미국 의회가 테러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까지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완전 통제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뒤 이후 나라 안팎의 거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슬림 입국금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9일 영국 런던시장에 선출된 무슬림 사디크 칸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며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서자 “사디크 칸의 런던 시장 당선을 기쁘게 생각하며 칸 시장은 (입국금지의) 예외가 될 수 있는 무슬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핵심 공약과 관련해 말 뒤집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에는 NBC 뉴스 인터뷰에서 부자증세와 최저시급 인상을 주장하며 이전과 180도 달라진 입장을 보였다.
그동안 감세를 주장해 온 트럼프는 “솔직히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고 중산층과 기업, 모든 (일반) 사람들에 대한 세금은 낮춰야 한다. 그러나 내가 환상을 가진 것이 아니며 내 제안이 최종적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최저시급 인상에 반대해 온 입장을 번복해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당 7.25달러(8천377원)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최저 시급이 어느 정도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밖에 멕시코 기념일인 ‘신코 데 마요’(1862년 5월5일 푸에블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한 날)를 기념해 타코를 먹는 사진과 함께 ‘히스패닉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트위터 등에 올려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멕시코 이민자들을 ‘성폭행범’이라고 묘사하는 등 히스패닉에 대한 숱한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이 같은 말 뒤집기는 자신에 대한 당내 불안감, 거부감과 더불어 본선에 대비한 전략적 포석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쥔 히스패닉계 등 소수계 껴안기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인종, 종교, 여성차별 등 막말과 거침없는 행보 덕분에 공화당 대선후보 자리까지 꿰찬 상황인 만큼 그의 핵심 공약 뒤집기가 역으로 지지층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준비 안 된 후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