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코로나 초기 ‘마스크 증산’ 제안 묵살했다”

“미국 정부, 코로나 초기 ‘마스크 증산’ 제안 묵살했다”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0-05-10 11:47
업데이트 2020-05-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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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허니웰 인터내셔널의 N95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한 생산라인 직원의 말을 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눈을 가리는 투명 고글을 착용했을 뿐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2020.5.5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허니웰 인터내셔널의 N95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한 생산라인 직원의 말을 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눈을 가리는 투명 고글을 착용했을 뿐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2020.5.5
AP 연합뉴스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미국에서 감염 확산이 본격화되기 전인 1월 정부에 마스크 생산량을 늘려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묵살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주요 마스크 제조업체인 ‘프리스티지 아메리테크’가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보건복지부에 마스크 생산기계를 복구해 생산량을 늘리자는 의견서를 보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10일 보도했다.

마스크 제조업체, 美 첫 확진자 나오자마자 보건복지부에 제안
미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보고된 다음날이다.

당시 이 회사의 마이크 보웬 부회장은 홍콩과 같은 나라에서 마스크 주문량이 증가하자 의료용 N95 마스크의 국내 생산을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에 우선권을 주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접촉했다고 한다.

보웬 부회장은 로버트 캐들렉 질병 준비 및 대응 담당 차관보를 포함한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에게 이메일을 통해 “우리 공장에 N95 생산라인이 있는데 이를 재가동하는 게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심각한 상황에서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웬 부회장은 “지금도 전화 주문이 몰리고 있어 정부 수주는 필요 없다”면서 “단지 상황이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애국이 먼저고, 사업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당국 “아직 답변할 상황 아니다” 제안 수용 안해
이에 보건복지부 측은 답장에서 “아직 정부가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을 상황은 전혀 아닌 것 같다”고 답해 보웬 부회장의 제안에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결국 정부는 보웬 부회장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이 회사에선 한 달에 700만개까지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이 있지만 여전히 주문 물량 외엔 가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의 국장이었던 릭 브라이트. 그는 정치보다 과학과 안전을 우선시하려다 캐들렉 차관보 등으로부터 보복을 당해 4월말 직무에서 배제된 후 국립보건원으로 전보됐다고 주장했다. 2020.5.6  AP 연합뉴스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의 국장이었던 릭 브라이트. 그는 정치보다 과학과 안전을 우선시하려다 캐들렉 차관보 등으로부터 보복을 당해 4월말 직무에서 배제된 후 국립보건원으로 전보됐다고 주장했다. 2020.5.6
AP 연합뉴스
보웬 부회장의 제안은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의 국장이었던 릭 브라이트가 폭로한 89페이지짜리 문서에 간략히 포함돼 있다.

브라이트 전 국장은 정치보다 과학과 안전을 우선시하려다 캐들렉 차관보 등으로부터 보복을 당해 지난달 말 직무에서 배제된 후 국립보건원으로 전보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극찬한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공개된 이메일에 따르면 브라이트 전 국장은 캐들렉 차관보를 비롯한 보건복지부 지도부에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해 설득하려 했지만 납득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 커지자 의료진까지 ‘마스크 대란’
보건당국은 코로나19 사태 초반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기회를 놓쳤고, 몇 주 뒤 바이러스가 미국 내에서도 급속히 확산되자 마스크 대란이 발생했다. 특히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고투 중인 의료진이 감염에 노출되는 위험을 안게 됐다.

의료진마저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게 되자 그제서야 트럼프 정부는 통상 가격의 몇 배를 주고서라도 마스크를 조달하기 위해 백방으로 공급처를 알아봤다. 또 비상 행정명령을 통해서라도 민간기업에 마스크 생산량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고 WP는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측은 보웬 부회장의 제안서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WP의 요청에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한 정부 고위 관료는 익명을 전제로 “보웬 부회장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라며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당시에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다른 보건복지부 관료는 “정부에는 계약 절차가 있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빠르지 않다”고 밝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서 숨진 동료들의 사진을 들고 의료물자 부족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간호사들. 2020.4.22  UPI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서 숨진 동료들의 사진을 들고 의료물자 부족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간호사들. 2020.4.22
UPI 연합뉴스
정부의 느린 대처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된 의료진들은 환자 치료 과정에서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며 지난달 21일 백악관 앞에서 의료물자 부족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마스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 등으로부터 수입한 방역용 N95 마스크 상당수가 인증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67종의 수입산 마스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약 60%에서 미세입자를 걸러내는 기능이 기준치 이하로 나타났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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