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냐 혐오냐…‘올랜도 사건’을 대하는 엇갈린 시각

테러냐 혐오냐…‘올랜도 사건’을 대하는 엇갈린 시각

방승언 기자
입력 2016-06-15 18:04
업데이트 2016-06-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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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총기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진 다실바가 14일 추모공간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2016. 6.15 EPA 연합뉴스
‘올랜도 총기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진 다실바가 14일 추모공간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2016. 6.15
EPA 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격사태로 기록된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일까. 이슬람 극단주의? 아니면 동성애 혐오일까? 미국 정치권 및 현지 언론 역시 이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사건은 이랬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올랜드의 동성애자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 49명의 사망자와 53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오마르 마틴은 범행 직전 911에 전화를 걸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틴과 IS 조직 사이의 직접적 연계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마틴이 과거 동성애 혐오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고 밝혀지면서 정확한 범행 동기에 대한 추측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저마다 다르게 바라본다, 보고 싶은 대로

12일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칼럼니스트 마가렛 설리반은 이번 사건이 “뉴스계의 ‘로르샤크 검사’(Rorschach test)와 같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로르샤크 검사는 잉크자국으로 만든 좌우대칭 그림 10장을 피검사자에게 보여준 뒤 어떤 형상으로 인식되는지 물어보는 심리검사법의 일종이다.

설리반은 “총기규제 옹호자들에게 이 사건은 총기 학살 방지에 또다시 실패한 법 체계의 허점을 보여주는 단상이다. 한편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을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일은 이슬람 신앙 전반을 테러주의로 매도할 좋은 기회로 인식될 것이다. 또한 동성애 인권 운동가들에게 이번 사건은 LGBT(성소수자) 공동체를 겨냥한 혐오범죄로 받아들여진다”면서 판단 주체의 관점에 따라 동일 사건이 서로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했다.

●“이슬람이 문제다” - 도널드 트럼프

논란이 된 도널드 트럼프의 트윗
논란이 된 도널드 트럼프의 트윗 사진=AP 연합뉴스(좌)/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공식계정
실제로 무슬림 포용에 반대하는 일부 현지 정치인들은 올랜도 총격을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3일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이 자신이 평소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트럼프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제쯤이면 비로소 우리나라가 강인하고 영민해져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면서 “극단적 이슬람 테러주의에 대한 내 견해의 정당성이 이번에 증명됐음을 축하해준 여러분들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보다 자기 정견의 당위성 강조에 역점을 둔 이 트윗은 곧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명백한 동성애 혐오범죄다” - LGBT 공동체

이처럼 사건의 어느 단면만을 우선적으로 부각시키려는 것은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다.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이자 동성애자인 오웬 존스는 12일 영국 뉴스채널 스카이뉴스에 출연, 이번 사건을 ‘동성애 혐오범죄’로 적시하지 않는 언론들의 자세를 강력히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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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깃발 아래 모인 성소수자 행진. 샌타애나 AP 연합뉴스
무지개 깃발 아래 모인 성소수자 행진. 샌타애나 AP 연합뉴스 동성애를 옹호하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에서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출연한 다른 토론자들은 이번 총격이 지난 파리 테러와 마찬가지로 ‘민간인에 대한 테러’로 폭넓게 이해돼야 하며,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비추었을 때 ‘동성애 혐오’만이 유일하고 직접적인 범행동기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는 반론을 폈다. 이에 존스는 결국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섰다.

물의를 빚었던 존스의 행동은 그러나 올랜도 사건 보도에 있어 동성애 문제를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일부 언론사들의 편향성에 LGBT 공동체 전반이 가지는 불만을 잘 드러내고 있다. LGBT 옹호단체 GLAAD의 대표 사라 케이트 엘리스는 “일부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보도에서) LGBT 이슈 언급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을 ‘보도’하는 대신 ‘이용해먹는’ 언론들

미디어 전문가들은 독자 만족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언론사들의 관행이 이런 논란을 한층 가중시키는 주범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미국언론연구소(American Press Institute) 대표 톰 로젠스틸 소장은 “매체들은 뉴스를 보도(cover)하는 대신 고객 만족의 도구로 이용(exploit)하고 있다”면서 사건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다루지 않고 ‘편들기’에 매진하는 언론사들을 규탄했다.

이에 몇몇 언론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CNN 칼럼니스트 프리다 지티스는 14일 기사에서 “미국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들까지 마치 ‘테러리즘’과 ‘동성애 혐오’라는 두 가지 요인이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서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논조를 취한다”며 “그러나 이들이 한데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진짜 본질’은 ‘반인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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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재무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한 뒤 나와 기자들에게 올랜도 총격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2016. 6.14 A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재무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한 뒤 나와 기자들에게 올랜도 총격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2016. 6.14
AP 연합뉴스
미 정부 또한 해당 사건의 성격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우회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1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을 LGBT 이슈와 관련해 바라볼 여지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직 우리는 진정한 범행동기를 모른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답했다.

“IS 등 왜곡된 이슬람 신앙을 지닌 단체들은 성소수자들을 평등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인식에 위협을 느낀다. 범인의 구체적 동기가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이러한 파편적이고 악랄한 사상이 (범인의)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둘 다”

CNN의 지티스 또한 범인의 실질적 동기가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이번 범행이 결국 ‘인류 존엄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사실을 다 같이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랜도 사건이 ‘테러’와 ‘혐오범죄’ 둘 중 어느 쪽이었냐고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둘 다’”라며 “살인이 나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을 인류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도달할 수 있는 합의점”이라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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