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 후 일본을 말하다] “日 원전정책 국민에게 다시 물어봐야”

[대재앙 후 일본을 말하다] “日 원전정책 국민에게 다시 물어봐야”

입력 2011-03-29 00:00
업데이트 2011-03-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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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모토 히로시 NHK 앵커

“앞으로 일본은 원자력 정책에 관한 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봐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 NHK의 후쿠시마 원전 재난방송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이와모토 히로시 해설위원은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금의 후쿠시마 원전 위기가 일본의 원전 정책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진단이자 원자력 정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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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모토 히로시 NHK 앵커가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오판과 더딘 실행력을 비판하며 “피폭의 공포를 더 많은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모토 히로시 NHK 앵커가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오판과 더딘 실행력을 비판하며 “피폭의 공포를 더 많은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피폭한 작업원 2명이 퇴원한다는데 괜찮은가.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물에 발을 담갔는데 장화를 신지 않았다. 그래서 베타선 열상을 입었다. 방사선의 경우 화상이라고 표현하지만 보통 화상과 다르다. 방사선은 유전자를 상하게 한다. 처음에는 겉으론 괜찮지만 심하면 세포가 분열을 못해 피부가 벗겨지고 좀처럼 재생이 되지 않는다. 걱정되는 일인데, 전신이 방사선에 오염된 것이 아니고 일부이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사전 점검을 하지 않고, 장화도 신지 않고 피폭됐다. 현장 관리가 미숙한 것 아닌가.

-작업원들의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장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원전 상태를 감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 좀 더 빨리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너무 느리다. 원전 주변 주민의 피난만 해도 그렇다. 주민들이 패닉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정부의 판단과 실행이 너무 늦다.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 레벨이 6이상이라는 설이 있다.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인상으로는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때보다 높다. 그때보다 더 많은 영향을 지금 (원전사태가) 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원전이 언제 안정화할 수 있나.

-상당히 걸릴 것이다. 펌프가 돌아가지 않으면 원자로 냉각이 되지 않는다. 모터를 일일이 체크해야 하고, 방사성물질도 가득 차 있고, 오랜 시간 작업할 수 없어 시간도 많이 걸린다. 1개월 걸릴지 그 이상 걸릴지 알 수 없다.

→일본 정부의 피난 지시가 너무 애매하다는 비판이 많은데.

-주민들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말 안전한지, 위험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가 흑이냐 백이냐 하는 판단을 빨리 내려줘야 한다. 극히 미량이라 하더라도 장기간 쐬면 그 영향이 나타난다.

→원전 사태는 인재(人災)라는 의견이 우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 도쿄전력 등이 ‘상정 밖’(想定外)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만, 정말 용서할 수 없다. 하다 못해 원전을 가동시키는 비상용 전원을 바다쪽에 만든 건 안이한 태도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위대, 소방대의 투입이 늦었다. 더 빨리 했어야 했다. 바닷물 주입 판단도 늦었다. 원전 사태에 대응할 강력한 사령탑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확산된 원인을 제공했다. 원자력위원회도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원전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될까.

-국민이 원자력을 거부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국민들에게 원자력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정치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왔다.

→피폭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1999년 도카이무라 원전 사태 때 대량으로 피폭한 작업원 2명이 아주 비참하게 죽었다. 그걸 취재했다. 피폭하면 생명의 설계도인 DNA가 부서지는 것인데 세포 재생이 안 돼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근육층이 드러나고 몸 안의 액체가 다 나온다. 결국은 심장이 멎는다.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국인 일본의 원전 정책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판단해야 한다. 피폭의 공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정부에 제언이 있다면.

-깃발 흔들고 일본의 두뇌를 모두 모아서라도 원전 사태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 ‘올 재팬’(all Japan)으로 움직여야 한다. 원자력은 각 분야가 세분돼 있다. 전문가를 모아 대책을 만들고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 정말이지 최악의 사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글 도쿄 황성기기자 @seoul.co.kr

■이와모토 히로시

1965년 에히메 현 출생. NHK 앵커 겸 해설위원. 의료, 원자력 분야가 전문. 1999년 도카이무라 원전에서 발생한 임계사고로 피폭한 작업원이 피폭치료를 받았으나 83일 만에 사망하기까지를 집중 취재해 TV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같은 내용을 ‘스러져가는 생명’(신초문고 2006년 발간)이란 책으로 정리했다. 3·11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 NHK 재난방송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2011-03-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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