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中 류샤오보] 류샤오보 가시밭길 인생역정

[노벨평화상 中 류샤오보] 류샤오보 가시밭길 인생역정

입력 2010-10-09 00:00
업데이트 2010-10-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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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복선동죄로 11년형… 옥중 수상

변호사 겸 작가인 류샤오보(劉曉波)는 중국 반체제 운동과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류샤오보는 1955년 12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청년(知靑)이라는 이유로 건축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지린대학 중문과에서 수학한 뒤 베이징사범대학에서 198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하와이대학,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등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해외 견문을 넓혔다.

류샤오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반체제 운동에 눈을 떴다.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던 철학자 리저허우(李澤厚)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류샤오보가 쓴 글은 중국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가라말(黑馬)’이라는 필명을 얻었다.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하자 컬럼비아대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던 류샤오보는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에 동참했다. 톈안먼 사태 발생 이틀 뒤인 6일 중국 공안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류샤오보는 공직을 박탈당해 강단에서 쫓겨났다. 당시 류샤오보는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 등과 함께 ‘톈안먼 4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때부터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중국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중국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다.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 넘게 감금됐던 그는 1996년 10월에는 ‘사회질서교란죄’ 명목으로 법원에서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3년간 복역했다. 그럼에도 류샤오보는 필봉을 놓지 않은 채 작가 활동을 계속하면서 정부를 공격하고 중국 국민의 인권에 주목했다. 류샤오보의 영향력은 그가 2003년 8월 중국 펜클럽 회장을 맡게 되면서 배가됐다. 국제적인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의 중점 감시 대상이 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감금을 당하는가 하면 외출은 물론 전화까지 차단돼 사실상 외부로부터 격리되는 신세가 됐다.

류샤오보는 2007년 외국 매체에 쓴 글이 문제가 돼 잠시 중국 당국에 억류됐다가 2008년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08헌장’을 발표하기 이틀 전인 12월8일 체포됐다. 류샤오보는 6개월 넘게 변호사나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금지당한 채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끝에 2009년 6월23일 국가 전복 선동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2월25일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국가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에 2년 정치권리 박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11일 베이징 고급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류샤오보는 현재 랴오닝(遼寧)성 판진(盤錦)감옥에 갇혀 있다.

노벨평화상 이전에 미국과 홍콩의 단체들이 주는 각종 인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선택의 비판-리저허우와의 대화’, ‘심미와 인간의 자유’, ‘알몸으로 하나님에게 ’, ‘중국당대정치와 중국 지식인’, ‘양심적으로 말하는 민족’, ‘미래의 자유중국은 민간에’, ‘ 단인독검-중국당대민족주의비판’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0-10-0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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