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화적 실험이다. 촬영기간만 12년이다. 배우들은 12년 동안 매년 한 번씩 만나 며칠 동안 영화를 찍고 헤어졌다. 다행히도 배우들에게는 별 변고가 없었고 제작자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찍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 황당한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차근차근 진행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소년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고 어른은 조금씩 늙어갔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165분 동안 배우들의 실제 시간 12년은 강물처럼 쿨렁거리며 깊고 멀리 흘러간다. 2002년 35㎜ 필름으로 처음 찍기 시작해 디지털 촬영이 대세가 된 2013년까지도 촬영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소년에게는 그만의 세계가 있다. 여섯 살 소년이 어른의 문턱에 이르는 열여덟 살까지 수많은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또 그만큼의 환희와 가슴 벅찬 기억들이 그 세계 안에 들어 있다.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혼한 엄마는 억척같이 산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히 귀 기울인다. 공부하고, 취업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엄마가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동안 메이슨 또한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높고 낮은 파고를 고스란히 겪는다. 익숙한 친구들과 헤어지고, 학교를 옮기고, 누나와 투닥거리며 싸우고, 양부에게 모욕을 당하며, 엄마 몰래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셔보고, 사랑을 찾았지만 떠나보내는 것 등이다.

메이슨은 함께 살지 않지만 주기적으로 만나는 아빠(에단 호크)를 통해 삶의 안정감을 얻는다. 그는 무명의 음악인이자 비정규직으로 불규칙적인 삶을 전전하지만 아빠로서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딸에게 피임법을 알려주고, 실연한 아들에게 아픔을 견뎌내는 방법을 조언한다. 어느 날 각각 독립해서 자기 노래를 부른 비틀스 멤버들의 노래를 모은 시디를 선물하면서 무심한 듯 아빠는 한마디를 툭 던진다. “(멤버들 중)누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야.”

그리고 문득 돌아보니 아이는 어른이 돼 더욱 큰 세상을 마주 대한다. 아이를 막 키우기 시작한 부모와 다 키워낸 부모들은 느낄 수 있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겠지 또는 우리 아이도 저렇게 자랐구나, 하는. 천신만고 끝에 지켜낸 행복한 가정을 노래하는 식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 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가정의 가치와 부모의 역할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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