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1000만 돌파 앞둔 송강호에 관한 모든 것

“그는 배우이면서 대본이고 관객이다.” 1000만 관객 고지에 새로 깃발을 꽂는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송강호(47)다. 곱씹어 볼 것도 없다. 감독이 본 송강호는 한마디로 ‘영화의 전부’였다. ‘변호인’이 19일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그는 지난 6개월간 멈추지 않는 흥행 엔진으로 기록된다. 지난해 8월과 9월 잇따라 개봉한 ‘설국열차’(관객 934만명)와 ‘관상’(913만명)은 1000만명을 카운트다운하다 아쉽게 주저앉았다. 한 배우가 단 6개월간 30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움직인 기록은 한국영화사 한편을 장식할 만하다. 이쯤 되면 송강호는 ‘흥행 괴물’이다.









영화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등 3편으로 6개월간 3000여만명의 관객몰이 기록을 세운 배우 송강호. 1000만 관객 흥행 전담 배우가 된 지금 그는 ‘가장 송강호적인’ 소시민적 이미지를 뛰어넘고 싶다.<br><br>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영화계 안팎에서 새삼 그를 연호하고 있다. 이제 다시 주목되는 것은 ‘변호인’으로 그 자신이 주연한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괴물’(1301만명)의 기록을 깰 것인지 여부다. ‘배우 송강호’의 브랜드 파워는 어디서 비롯되고 있을까.

그와 함께 작업한 제작자, 감독, 배우, 투자 배급사, 홍보 마케터 등 현장 관계자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그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는 배우”다. “영리하고 철저하지만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이고 세심한 면모가 좁은 한국 영화판에서 그를 성공으로 이끈 키워드”라고 압축한다.











송강호의 연기 몰입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촬영 현장에서 그는 “스태프들이 질릴 만큼 근성을 드러내는 배우”다. 그가 주연한 ‘효자동 이발사’와 ‘YMCA 야구단’의 미술 감독을 맡았던 강승용씨는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킨 뒤 내놓는 연기에 주변 스태프들이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투자 배급사인 NEW의 영화사업부 장경익 대표는 “극중 송우석의 공판 장면을 쉬지 않고 원테이크로 찍을 때 현장에서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개 톱배우들은 가볍게 톤을 맞추는 게 보통인데, 송강호는 첫 리딩부터 완벽하게 준비해 와 배우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사에 들어가는 호흡까지 고민하고 계산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성실함에 후배들이 ‘겁내는’ 배우이기도 하다.

‘관상’에서 내경(송강호)의 아들 역으로 나왔던 배우 이종석은 “선배님은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는 날에도 항상 촬영장에 나와 모니터를 보며 영화 전반을 챙겼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출연작들이 그랬지만 ‘변호인’은 특히 그의 연기력에 8할을 기댄 영화였다. 1991년 연극 ‘동승’으로 데뷔한 그의 연기력은 동료 선후배들에게 단박에 인정을 받았다. 극단 차이무에서 함께 단원 생활을 했던 연극인 오지혜씨는 “어느 날 연극 무대에서 (송강호가) 술 취한 아파트 경비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연극판에서 그의 연기는 일찍이 정평이 났고, 그가 영화 ‘넘버3’에 캐스팅됐을 때 모두들 적역을 맡았다며 성공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 스태프들은 그를 “1급 스타 티를 전혀 내지 않는 배우”라고 증언한다.

‘설국열차’의 홍보 담당자에게는 “무대 인사나 인터뷰를 할 때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오는 배우이며, 스케줄을 펑크 내거나 변명하지 않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까지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챙기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가을 ‘변호인’의 조명 감독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날 행사가 있었던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던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스태프들 사이에서 얘깃거리다. 스태프들에게 그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피로연에까지 반드시 참석해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맥주를 따라 주는 사람”이다.

뜻하지 않게 스케줄이 꼬일 때 ‘표정관리’를 못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다혈질 톱스타들은 많다. 다분히 내성적인 면이 있지만 자신의 갈등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처세’ 스타일도 그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영화 ‘밀양’을 함께 찍었던 한 스태프는 “상대의 역할과 지위에 맞게 말과 행동을 구사해 누구에게든 실수하지 않는 처세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제작자들에게는 그래서 더 신뢰가 높다. 그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가장 서민적인 풍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관성에 매몰되지 않는 연기력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감독들이 다시 찾는 배우 1순위다. 최근 양우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를 “배우 그 이상”이라고 압축했다. 대사의 문장뿐만 아니라 행간을 정확히 읽고 본인의 연기를 관객의 눈으로 객관화시켜 본다는 얘기였다.

양 감독은 “왜 감독들이 송강호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됐다”고 덧붙였다. 장경익 대표는 “극중 공판의 원테이크 장면은 카메라가 줄곧 주인공만 따라다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이해나 연출적인 마인드가 없고서는 만들기 힘든 대목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보여줄 정도로 아이디어가 풍부한 배우”라고 분석했다.

영화판의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된 데는 배고픈 연극배우 시절, 무명 영화배우 시절이 자양분이 됐다는 시각들이 많다. “그런 삶의 경험이 휴머니즘 묻어나는 연기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원동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이라는 얘기다.

홍보사 관계자들에게는 ‘거저 먹는 배우’로 통한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춰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는 ‘송강호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자체”(‘관상’의 홍보 대행사 ‘영화인’ 관계자)라는 말이 정설처럼 통한다.

투자자들에게 그의 브랜드가 주는 신뢰는 압도적이다. 국내 40대 남자 배우 중 연기력, 티켓 파워, 존재감에서 1순위이며 어느 시대, 어떤 캐릭터도 소화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 그 자체로 중요한 투자 결정 요소(한 메이저 배급사의 투자 담당자)다. 장 대표는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주연배우가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과감한 투자 결정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0만 관객 흥행 전담 배우로 이름표를 단 송강호는 그러나 지금 간절히 넘어서고 싶은 벽이 있다. 그를 우뚝 일으켜 세운 소시민적 연기는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한테는 ‘영광의 족쇄’ 같은 것이다.

지난달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서민적인 이미지가 자신의 한계라고 고백했다. “소시민적 친근감은 나의 매력이자 최대 약점이다. 지나치게 친근한 느낌에는 신기함이 있을 수 없다. (관객들에게)신기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의 작품 선택 기준은 딱 하나, 얼마나 새로운가이다.”

송강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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