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진성(42)이 시인 황병승(49)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하며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박진성 시인은 24일 자신의 블로그에 ‘황병승 시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황병승 형이 죽었다. 죽은 지 보름 만에 가족들이 발견했다고 한다”며 “황병승 시인은 몇몇 무고한 사람들에 의해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 후 황폐하게, 혼자 고독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자 무고의 희생자”라며 “문단이라는 거대 이해 집단이 황병승 시인을 죽인 공범들”이라고 지적했다.

박진성 시인은 “두 명의 학생이 12년 전 있었던, 일방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대자보로 폭로했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 의혹은 진실이 되어버렸다”면서 “황병승 형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고 무고를 입증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세간의 관심은 빠르게 무관심으로 변해갔고 모든 고통은 온전히 황병승이라는 개인에게 남겨졌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한 시인을 죽이고, 한 시민을 죽인 것”이라며 “생업을 잃고, 동료를 잃고, 문학을 잃고 그렇게 황병승 형은 죽어갔다. 가슴이 찢어진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애통해했다.

앞서 황병승 시인은 이날 오전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혼자 살던 황병승 시인의 시신은 그의 부모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을 수습해 원당 연세병원으로 옮겼으며 황병승 시인이 사망한 지 보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했다.

유족에 따르면 황병승 시인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황병승 시인은 서울예술대학교 강사로 재직하던 2004년, 여제자를 상대로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12년이 지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서울예대 안전합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황씨가 제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황병승 시인은 “저로 인해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숙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황병승 시인의 빈소는 그의 본가가 있는 경기도 양주의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이하 박진성 시인 글 전문>

황병승 시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황병승 형이 죽었습니다.

죽은 지 보름 만에 가족들이 발견했다는 뉴스입니다.

정말 슬프고 또 끔찍한 일입니다.

생물학적 사인은 더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이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016년 10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몇몇 시인과 소설가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었습니다.



병승 형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

황병승 형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대자보가 게재되었고

병승 형은 실명과 사진이 그대로 노출된 채 매스컴에 보도되었습니다.



병승 형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12년 전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두 명의 서울예술대학교 학생이

대자보에 붙인 사건입니다. 2016년의 일이니까

2004년에 있었던 일을,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대자보를 통해 두 명의 학생이 학교에 붙였고

그 ‘의혹’은 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로 병승 형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마포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1970년 생 황병승 형은 30대 초반에 데뷔해서 특별한 직업 없이

전업 시인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성폭력 의혹 제기 이후, 모든 문학 전문 문예지에서 청탁을 하지 않았고

또한 어떠한 출판사에서도 시집 출간 제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생계 수단이었던 시 창작 강좌도 모두 끊겼습니다.



소송을 하라고 제가 몇 차례 권유를 했었는데

12년 전에 있었던 일의 진위 여부를 다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까 황병승이라는 시인은 ‘성폭력 의혹 제기’(강단에서의 성희롱 의혹)만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었고 생업이 끊겼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병승 형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고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간의 관심은 빠르게 무관심으로 변해갔고

모든 고통은 온전히 황병승이라는 개인에게 남겨졌습니다.



우리가 죽인 겁니다. 우리가, 한 시인을 죽인 거고 한 시민을 죽인 겁니다.

12년 전,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발언이 문제가 되어 하루 아침에

생업을 잃고 동료를 잃고 문학을 잃고 그렇게

황병승 형은 죽어 간 것입니다.



병승 형과의 통화 내용을 남겨둡니다.

“10년 동안 만났던 애들도 전화를 안 하더라고...”



엎드려 울면서 한 시인의 외로운 목소리를 듣습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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