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백척간두에 선 한국의 운명/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열린세상] 백척간두에 선 한국의 운명/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2014-07-05 00:00
업데이트 201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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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의 운명에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마침내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1일 총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헌법 해석 변경을 의결했다. 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안보원칙을 폐기하고, 총리의 뜻에 따라 무력행사를 하겠다는 군국주의의 명백한 부활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전쟁할 수 없는 나라였다. 지난 69년간 일본 지배계급은 절대주의 천황제국가를 염원하며 전쟁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개정을 노려왔다. 사실상 일본은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추구하는 천황제국가다. 팔굉일우는 팔방의 넓은 세계를 일본이라는 하나의 집 아래 천황이 지배하겠다고 하는 침략이데올로기다.

밀접한 타국이 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총리가 판단하면 전쟁을 하겠다는데 그 1순위는 당연히 남북한이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굳이 들출 필요도 없다.

만약 남북한에서 유사사태(전시상황)가 발생하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의 요구로 일본군은 한반도에 출격할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일본이 동북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본극우파들은 오랜 경기침체와 중산층 붕괴, 지진과 원전사고 등으로 야기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쇼비니즘으로 결집해 왔다. 이런 극우적 사고가 일본 시민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위력적인 사건 전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다. “당신네들은 우리 할머니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강간범, 범죄자로 몰린 우리 할아버지들이 불쌍하다.”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 한 시민단체 대표가 한 말이다.

더 무서운 전조는 우리 내부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다. 오히려 그 의미를 축소하려고만 한다. 19세기 말 한·중·일의 역사가 지금 우리 앞에 다시 서 있는 셈이다. 역사의 복수를 피하려면 누구를 위한 한국인가를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인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작 ‘역경의 행운’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고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 가정교육의 모토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국가를 의식할 때는 이와 판이한 행동을 한다. 기습공격을 잘하는 것이 그 일례일 것이다.”

최재석 교수는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노일전쟁, 1910년 한국 강제 점령, 1937년 중국 침략,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군의 소위 ‘위안부’, 731부대 등을 그 예로 들었다.

2012년 9월 일본의 양심세력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영토 갈등은 근대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호소다. 역사는 한 공동체가 경험한 집단기억이다. 기억에서 지워진 역사는 수레바퀴의 축처럼 다시 돌아온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원칙을 넘어서서 지극한 충성의 대상인 천황을 정점으로 한 신분적 상하관계를 절대시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을 얽어매는 치명적인 족쇄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겪은 일본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직도 무거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역사의 질곡은 민초들이 온전히 떠안게 마련이다.

한·중·일 모두 백척간두에 서 있다. 누구를 위한 일본인가, 누구를 위한 중국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한국의 운명은 중국과 일본의 운명과 따로 있지 않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자는 그 바퀴 아래에서 신음하는 자, 결국 세계 각국 민초들의 몫이다. 특히 한국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한국인 그 누구도 한국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세상 만물이 변하듯이 운명도 변한다. 주어진 명이 움직이기에 운명이다. 역사에 감춰진 운명의 비밀이 있다.
2014-07-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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