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성공의 덫/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성공의 덫/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13-09-05 00:00
업데이트 2013-09-05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철물점, 세탁소, 양복점이 있다. 낡은 집이 소위 노포점이라는 일본식 권위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낡은 것 그대로 낡아 빠진다. 그 속에 고즈넉한 카페, 맥줏집, 아담하고 이국적인 식당도 생겨난다. 이 새 가게의 주인들은 의욕에 찬 청년들이다. 가게이지만 문화공간이고 이야기가 있으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세련됨도 맛본다. 유학으로, 인턴활동으로, 배낭여행으로, 보고 배운 견문이 동네 골목에 그대로 펼쳐지는 것에서 새로운 기운을 느낀다. 벼랑 끝에 몰리는 실업의 위기가 만들어낸 돌파구를 보면서 88만원 세대, 청년 유니온, 아픈 청춘이라는 단어들을 잠시 잊는다. 경제민주화, 복지라는 추상적인 단어 속에 매몰된 청년들의 얼굴을 동네에서 더 구체적으로 만난다.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미래는 아름답고 밝다. 절로 미소가 느껴지는 경쾌한 상상력을 만난다. 천편일률적인 체인점이 아닌 개성이 넘치고 사람의 향기를 뿜는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청년들이 상상력과 열정으로 개척해 놓으면 집세와 월세가 높아져 정작 개척자인 청년들은 더 후미진 골목으로 밀려난다. 후미진 주택가, 한적한 시골길이 청년들의 손길로 생기를 얻는다. 밀어내도 다시 둥지를 트는 그들의 생명력에 미래의 기운을 느낀다.

성공의 덫이 있다. 한번 성공한 방식에 집착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근대화이론의 성공사례였다. 누구나 보릿고개를 넘은 ‘한강의 기적’을 말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2관왕 달성을 자랑한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한 기적을 말한다.

성공의 문법이 있었다.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논리였다. 과정의 편법과 무임승차의 추함도 결과의 성공이라는 빛으로 덮는다. 선 산업화, 후 민주화의 공식에 따른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가? 라는 질문에 익숙하다. 인권, 민주주의, 개성, 다양성, 협동의 문화를 실패자의 패자 부활전으로 여긴다. 가난에 대한 공통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은 개인의 성실함 때문이고, 실패는 가차없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성공의 경험을 몸으로 느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성공 문법을 확신하고 자신의 자녀세대들에게 주입하고자 한다.

문제는 과거의 성공 문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100년 단위의 변화 과정에서도 과거의 성공 문법이 통하지 않았다. 구한말 과거 공부에 매달린 청년과 신학문을 접한 청년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켜본 바 있다. 하물며 지금은 천년 단위의 지각 변동이 이는 시기이다. 2015년 이후 새 틀 짜기를 위한 유엔의 다양한 포럼에서 불평등 문제와 지속가능한 발전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부국과 빈국이라는 개념 대신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 부자 나라의 가난한 자들, 즉 불평등과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 즐겨 다루는 유명인사의 인생사 털어놓기를 보면 가난의 기억이 있고 약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IMF 외환위기 때 다시 몰락한다.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사회의 흐름과 추세의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았던 것을 확인한다.

요르단으로, 터키로 그리고 멕시코로 학생들이 방학 중 다녀온 나라의 이름이 다채롭다. 이제는 파리나 런던, 뉴욕에 다녀오는 것은 오히려 진부하다. 누가 더 오지의 작은 마을을, 문화적으로 더 이질적인 곳을 다녀왔는가 하는 것이 주목받는다. 인도네시아 바하사어를 안다거나 필리핀의 타갈로그어, 인도의 힌디어,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를 안다고 하면 더 앞서가는 것으로 여긴다. 유럽에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발신했던 메시지가 이제는 서 있는 곳이 중심인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번쩍번쩍한 새것보다는 빈티지가 더 세련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거꾸로 가는 신문명 흐름의 주역인 청년들의 미래를 기성세대의 과거식 성공 문법의 틀에 가두게 될까봐 걱정이다. 성공신화의 주역인 엘리트들의 과신은 청년들에게 덫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대중보다 더 우월하다는 미신에 빠진 엘리트는 더 위험하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한 시대가 아닌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를 빈다.

2013-09-05 30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