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부가 공정해지려면/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가 공정해지려면/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13-08-01 00:00
업데이트 2013-08-0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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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나라 살림을 하는 행정과 개인과 기업의 살림을 하는 경영은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조직, 인사, 예산 등 이론은 같다. 다른 게 있다면 행정은 주어진 세금으로 살림을 꾸리고, 개인과 기업은 돈을 벌어 살림을 한다는 점이다. 행정의 재원은 개인과 기업의 세금에서 조달되고, 개인과 기업의 재원은 그들의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타인의 주머니에 의존하는 행정은 공정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개인과 기업은 이윤 창출, 즉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공정성을 저버려도 행정은 망하지 않고, 사회갈등만 심화될 뿐이다. 행정의 주체인 정부는 대기업이 가진 대마불사보다도 더 질긴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 창출을 못 하는 기업은 망하고, 개인은 파산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행정을 하는 사람과 기업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행정을 하는 사람은 잘못해도 망하지 않기 때문에 나태해지기 쉽고, 기업하는 사람은 잘못은 곧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한다.

나태해도 생존이 가능한 집단과 나태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집단의 관계는 매우 역설적이다. 나태해도 되는 집단이 우위에 있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 익숙해 있는 집단이 하위에 있다. 우리 사회는 전자를 갑이라 하고 후자를 을이라 한다. 나태할 수 있으면서도 엄청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 정부이기에,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태생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업무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고압적 권한행사에서 고객 중심의 봉사행정으로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세금 징수도 공평해야 한다. 공평조세의 기준 중 하나가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이다.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의 비중이 높으면 소득의 역진효과가 나타나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간접세는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똑같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직접세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고, 부자는 많이 내는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간접세의 비중이 높으면 서민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국세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간접세 비중이 2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0%가 넘는다. 간접세 비중은 2005년 52.4%에서 2007년 47.3%로 낮아졌으나 2008년 48.3%로 반등한 이후 2011년 현재 52.1%로 다시 늘었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정부가 공평해지려면 간접세 비중을 줄여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가가치세를 늘림으로써 간접세 증세를 추진하는 행위는 공평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 공청회에서 소득세의 비중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소득세의 경우 과세구간 조정 없이는 공정 세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역진효과가 발생될 수 있다. 2012년 귀속 소득세 과세구간은 5등급이었다. 최하구간은 연소득 1200만원 이하로 세율은 6%, 다음은 4600만원 이하로 세율은 15%, 3등급은 8800만원 이하로 세율은 24%, 8800만원 초과는 35%, 3억원 초과는 38%로 설정해 놓고 있다.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분위별 연평균소득을 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2013년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10분위의 평균소득은 1억 2000만원, 소득 9분위 평균소득은 7900만원 수준이다. 현행 과세구간을 보면 9분위 수준의 소득자에게는 최고 소득세율 35%를 적용하고 있다. 연소득이 9000만원인 사람과 2억 9000만원인 사람의 소득세율이 35%로 동일하다면 공정하지 않다. 2013년 현재 평균소득이 5030만원 수준인데 부과하는 세율이 24%라면 공정한 세율인지도 의문스럽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사회복지와 같은 분배정책도 공정해야 하지만 조세정책도 공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공정해지는 첫걸음이다.

2013-08-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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