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선진국의 조건 돈, 몸, 정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선진국의 조건 돈, 몸, 정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입력 2011-07-16 00:00
업데이트 2011-07-16 00:3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자축하는 분위기 속에서 솔깃한 구호가 들려 온다. 역대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나라들이 선진국이었던 만큼 이참에 우리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로 가자는 것이다. 어렵게 삼수까지 하면서 유치한 평창 올림픽이 다시금 우리 특유의 합심과 끈기로 세계적인 성공 사례가 됐으면 좋겠고, 또 그 덕에 대한민국이 스키점프하듯 훌쩍 선진국으로 진입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면 돈 건강, 몸 건강, 정신 건강일 것이다. 우선 더욱 경제 성장을 이뤄 잘살아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돈이 많은 중동 산유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부자 나라라고 반드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버는 과정이 공정하고, 또 돈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가 건강해야 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다. 거리는 언제나 조깅족이나 사이클링족으로 활기를 띤다. 우리 사회도 생활체육이 널리 보급됐지만 보신 식품, 보약, 심지어 성형수술에 의존하는 건강관리 풍조가 여전하다. 돈보다는 땀과 시간으로 몸 건강을 유지해야 선진국이다.

‘돈’과 ‘몸’ 상태는 그런대로 선진국 대열. 하지만 정신 건강을 물으면 우리는 자신이 없다. 아니 무모한 자신감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가려진 해병대 병사 4명 총격 사망 사건과 그에 대한 대처가 좋은 사례다. 여전한 군대 내 병사들 간 구타나 가혹 행위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정서적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병사를 다루는 군대와 일반 사회의 태도는 너무나 후진적이다.

문제의 김 상병은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검사 결과 불안, 성격장애, 정신분열증 등이 확인돼 부대 전입 후 특별관리대상”이었다는 것이 해당 부대 소초장의 진술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 상병은 부대가 아니라 병원으로 보내 의사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했다. 우울증, 성격장애, 피해망상, 분열증과 같은 소위 정신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피할 수 있는 참혹한 사건을 방치한 꼴이다. 그 와중에 일부 언론은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느니,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정신’은 어디 갔냐는 식의 ‘정신 나간’ 말과 글을 쏟아냈다.

우울증은 도파민 등 뇌의 신경전달 물질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뇌질환의 일종으로, 성인인구 10명 중에 1명 정도가 이 질환을 경험한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의 3분의2가 자살을 생각하고, 피해망상이나 분열증과도 연관이 있다.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는 “아프다.”는 사실을 감추려 하고, 사회는 집단적인 무지를 드러낸다. 정신력과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상식이 만연해 있고, ‘정신병 환자’ ‘미친 사람’ 딱지를 붙이는 고약한 사회심리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의사 만나기를 꺼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신과 의술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정신병을 바라보는 사회의 정신건강은 후진국 수준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쯤으로 여기고 의사를 찾아 쉽게 치료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재미를 선사하던 최진실과 같은 우울증 연예인들의 죽음에 속수무책이었고, 얼마 전 해병대 참사도 미리 막지 못했다. 아마도 하루 평균 24명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자살률 1위의 오명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선진국인 미국의 정신건강 관리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20세기 초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등이 미국정신건강협회를 설립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회운동에 나섰고, 1917년 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육군과 해군에서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1946년 국가 정신건강법 제정, 1955년 의회 내 ‘정신병 및 정신건강위원회’와 1977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가 설립됐고, 1980년 이후로는 어린이, 노인, 이민자 중 정신병 환자들이 인권·고용이나 복지 부문에서 소외와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배려 정책을 내놓기에 이른다.

올림픽 유치의 기쁨이 돈과 몸 건강, 그리고 ‘아픈’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 건강에 미칠 수 있기를.
2011-07-16 26면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