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중우정치, 진중권/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중우정치, 진중권/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19-09-29 22:36
업데이트 2019-09-3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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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56) 동양대 교수는 TV 정치예능 논객이자 대중적 지식인이다. 1990년대 초반 그가 쓴 3권짜리 ‘미학 오디세이’는 지금까지 80만부 이상 팔린, 뜨거우면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인문교양서다. 시인 김지하(78), 유홍준(70) 전 문화재청장, 시인 황지우(67) 등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각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많았다. 낯설었던 ‘미학’이라는 학문은 진 교수로 해서 대중적 관심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머리 아픈 철학이 실상은 우리가 늘 접해 왔던 소설, 시, 영화, 그림 등 문화예술의 형태를 빌려 우리의 삶과 교직돼 왔음을 확인하며 더욱 그에게 열광했다. 남들 다 보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대중 편승 효과도 있었겠다.

대중의 열광과 별개로 학자로서 진 교수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중앙대ㆍ홍익대 등에서 겸임교수를 지냈으나 박사 학위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든 강의가 끊겼다. 이명박 정부 때였다. 권력자 입장에서 사사건건 비판해 대는 그의 존재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다 2012년 동양대 교양학부 전임교수가 됐다. 벌판을 떠돌며 풍찬의 설움을 겪던 진 교수로선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하나 지은 듯 안정감을 느꼈을 게다. 당시 최성해 총장은 “사회 유명인사를 교수로 임용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을 석좌교수로 들이고,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에게 석좌교수를 제안하는 등 유명인사들을 대학 인지도 제고에 활용하길 즐기는 최 총장으로서도 ‘윈윈’이었다.

최근 진 교수의 ‘사소한 행위’가 새삼 논란이 됐다. 조국 법무장관에 반대하지 않았던 점을 비판하며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다가 반려됐음이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27일 한 토론회에서 “(조 장관이 10여년 전부터 사법개혁 의지를 다졌던 것처럼) 지금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적격자라고 본다”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중우정치로 흘러간다는 것”이라고.

‘중우(衆愚)정치’는 어리석은 대중들이 이끄는 정치 형태를 일컫는다. 아고라 광장에 모여 연설 듣고 의견 나누던 그리스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들이지만 자칫 제한된 정보와 군중심리로 우중(愚衆)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낸 말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할 때 흔히 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미디어로 정보와 견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확증편향, 과잉확신 등 인식의 한계가 있다. 진 교수 책에 열광했던 이들 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우리 모두가 ‘깨어 있는 시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합리와 상식에 근거한 판단을 하기 위해 애쓴다. ‘중우정치’라는 단어로 많은 이들의 행동을 뭉뚱그리는 것은 폄훼에 가깝다.

youngtan@seoul.co.kr
2019-09-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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