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423일 굴뚝 농성 노동자/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423일 굴뚝 농성 노동자/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19-01-08 22:28
업데이트 2019-01-0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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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도 수은주가 여전히 영하권에 머문 지난 8일. 목동 75m 콘크리트 굴뚝이 초속 4m 바람에 휘청거린다. 위태로운 굴뚝 위에서 423일째 내려오지 않는 두 남자는 지난 6일 아예 곡기까지 끊었다. 홍기탁 파인텍 전 노조지회장, 박준호 사무장.
섬유 가공업체 파인텍의 사실상 모회사는 스타플렉스다. 스타플렉스 전무이사(강민표)가 파인텍의 대표를 겸임한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는 2010년 이후 고용 승계 및 생계 보장을 약속했음에도 두 차례에 걸쳐 번번이 이를 어겼다. 월 120만원의 실수령액을 받던 노동자들은 협상의 벽을 통감하며 2014년 굴뚝 위로 올라갔다. 당시 408일의 굴뚝 농성 끝에 어렵게 노사 합의를 맺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12일 다시 굴뚝 위로 올랐고, 이제 목숨까지 허공에 내걸었다. 노사의 극한 대립 속에서 과연 이들이 목숨을 부지한 채 굴뚝을 내려올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40년 전인 1979년 8월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YH무역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주는 이내 공장을 폐쇄했다. 이른바 ‘YH 여공’들은 몇 달 동안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하지만 권력도, 법도 노조 편이 아니었다. 벼랑 끝 노동자들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상도동 집을 찾아가 호소했고, 김 총재는 다음날 오전 기꺼이 당사를 내준 뒤 어린 여성 노동자들 앞에서 명연설을 남겼다.

“신민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결과는 알고 있는 대로다. 박정희 정권은 사흘 뒤 새벽 야당에 공권력을 투입, 강제 진압했고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국회는 품위 손상을 이유로 김 총재를 제명했고, 신민당 의원 전원은 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맞섰다. 10월 부마항쟁 불씨는 그렇게 지펴졌고, 유신 정권은 곧 막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몇 해 동안 이를 방관했다. 지난 연말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성장을 방문하면서 새 국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노사와 함께 네 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아쉽게도 뾰족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박홍근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8일 “지난 3일 13시간에 걸친 4차 협상 때 극적 해결의 가능성을 봤지만, 결국 노사 간 상호 불신의 벽과 인식의 간극이 너무도 큼을 재확인했다”면서 “중재 가능성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아보겠다”고 상황의 엄중함을 호소했다.

대립과 갈등, 이해관계의 조정은 정치의 핵심 기능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나서서 노사 양측을 적극 설득해 타협의 장에 나서도록 강제해야 한다.

youngtan@seoul.co.kr
2019-01-09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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