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미국판 문화대혁명/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국판 문화대혁명/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기자
오일만 기자
입력 2016-11-10 21:24
업데이트 2016-11-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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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도리가 있다는 말이다. 중국 대륙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대표적 구호였다. 기존의 사상, 문화, 풍속, 관습을 근원부터 파괴하는 광풍으로 이어졌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1966년 5월 16일 이른바 ‘5·16 통지’를 채택하면서 문화대혁명의 깃발을 올렸다. 당의 이름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낡은 사상과 문화를 무산 계급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타파한다는 것이다.

문혁의 전위부대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홍위병이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이 직접 쓴 ‘사령부를 폭격하라’(?打司令部)는 대자보를 통해 홍위병을 선동했다. 홍위병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젊은 혈기를 이용한 마오식 권력투쟁이었다.

타도 대상이 된 지식인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세력)로 낙인찍힌 지도층들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재판도 받지 않고 즉결 처형되거나 모욕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이도 부지기수였다. 문혁 기간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공장 가동을 중단한 채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경제 파탄을 가져오면서 덩샤오핑의 말대로 중국의 발전을 20년 후퇴시켰다. 문화대혁명의 10년 광풍은 1976년 마오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계는 충격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 전통 정치를 맹렬히 공격했다’는 제하의 사설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판 문화대혁명”이라고 명명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개인의 패배가 아닌, 전통 엘리트 정치의 패배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그렇다. 트럼프 현상으로 불리는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기득권과 기성정치에 대한 소외층의 분노와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의 총체적 결과다. 반란의 진원지는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에서 밀려난 백인 노동자들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막말과 기행으로 공화당 주류와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파문당했지만 극단의 선동정치로 권력을 잡았다.

빈부 격차에 분노한 미국민들을 향해 ‘1%가 모든 것을 갖는 모순을 바꾸자’고 한 버니 샌더스보다 모든 잘못을 이민자와 외국에 돌렸던 트럼프가 최종 승리자가 됐다. 대약진 운동 실패로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마오쩌둥이 불만에 찬 홍위병을 앞세워 주자파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곪아 터진 빈부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은 주류 기득권 세력의 아성을 허물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집권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현상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16-11-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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