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책 주인께 드리는 글(2)/송한수 기자

[길섶에서] 책 주인께 드리는 글(2)/송한수 기자

송한수 기자
송한수 기자
입력 2016-09-27 22:54
업데이트 2016-09-28 00:5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오늘 제가 막 막말을 하고, 신경 끄라고 얘기한 거 진심 아닌 거 아시죠?’

표지를 젖히자 곧바로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책엔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어 “모의고사 점수 낮아서 죄송해요”라고 속삭인다. 각오를 ‘성적’으로 다진다. 중간고사 땐 등수를 올리겠단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바람도 살짝 불었다. 길가 나무들이 간간이 몸부림을 치며 잎비를 흩뿌리곤 한다. 나도 덩달아 떨며 걷다가 아차 싶었다. 잊고 있던 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손글씨가 퍽 가지런하다. 그 마음씨를 읽을 수 있다. 공무원 ‘재활용 장터’에서 건진 책이다. 아들에게서 선물을 받았던 엄마가 내놓은 게 틀림없다. 자식 사랑을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으리라. 손때가 짙다. 차오르는 슬픔을, 눈물을 꾹꾹 눌러 삼켰으리라. 어머니는 그렇다.

책에선 몇 군데 땜질하듯 ‘화이트’로 덧칠했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울 엄마를 어떤 말로 달랠 수 있을까. 가슴 깊숙이 생채기가 덧났을 어머니를. 밤을 새하얗게 지웠을지도 모른다. 후회로 볼펜 끝을 깨물며. 자식은 그렇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2016-09-28 31면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