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백설찬가/손성진 논설실장

[길섶에서] 백설찬가/손성진 논설실장

손성진 기자
입력 2016-03-01 22:46
업데이트 2016-03-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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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날의 겨울, 앞이 안 보이는 함박눈 폭탄 속을 헤집으며 미친 듯 거리를 쏘다닌 적이 있다. 몇 년간 서울에선 이런 눈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겨울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을까. 2월의 마지막 날 하늘은 한바탕 백설을 선사했다. 한들한들, 꽃가루 같은 진눈깨비가 세상을 덮는다.

서쪽에서 몰려온 눈은 교외의 산야를 온통 뒤덮더니 침침한 도회의 음울한 일상까지도 포근히 안아 준다. 수필가 김진섭이 ‘백설부’에서 말했듯 “부드러운 설편(雪片)은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진다.”

눈은 세상의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 볼품없는 잡초도 눈꽃을 피워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백설은 엄마가 덮어 주는 하얀 솜이불같이 온 세상을 보듬는다. 그 속에서 화려한 꽃이든 더러운 시궁창이든 모두 한 가지, 눈부신 흰색이 된다. 순결의 흰색보다 더 빛나는 색이 있을까. 눈은 세상을 과거로 돌린다. 수십 년 전의 동심으로 우리를 이끈다. 눈이 내린다. 눈은 소리 없이 우리를 따뜻이 품어 준다. 시끄러운 세상도 눈이 내릴 때만큼은 고요해진다. 그러면서 똑같은 목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름답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2016-03-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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