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돌봄은 부가서비스가 아니다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돌봄은 부가서비스가 아니다

입력 2020-12-22 20:42
업데이트 2020-12-23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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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워킹맘으로서 나 역시 초등돌봄교실의 도움을 많이 받은 수혜자다. 나도 모르는 아이의 버릇, 취향들을 귀띔해 주시는 돌봄교실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이의 등하교 상황 체크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돌봄 선생님께 죄송해하며 문자를 보낸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초등돌봄교실의 운영 주체를 학교에서 지자체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온종일 돌봄 특별법‘의 추진이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돌봄전담사 파업을 거치면서 유보됐다고 한다. 12월의 2차 파업은 유보됐지만 이젠 교원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다. 돌봄교사들은 지자체로 돌봄교실이 이관될 경우 자칫 민간위탁이 되면서 신분과 처우가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해 법 제정에 반대하고, 반면 교사들은 나날이 가중된 돌봄교실 관련 행정업무 때문에 속히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기사를 읽으며 문득 ‘돌봄’이라는 행위가 지자체와 학교가 서로 떠넘기는 애물단지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무상으로 제공했던 일들이 사회에 나왔지만, 국가와 시장은 그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려 들지 않는다. ‘원래 공짜’ 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는 관념이 아직 너무 팽배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공기와 물처럼 사는 데 당연히 필요한 서비스여서 가격 또한 당연히 저렴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돌봄교실 운영이 문제가 된 것은 돌봄을 교육에 덧붙여지는 부가서비스로 염가에 제공하려 한 국가의 안일한 정책 때문일 것이다. 예산과 시설 부족, 중구난방식의 정책이 매번 지적돼 왔다. 사실 돌봄전담사도 교사도 괴로워한다는 뉴스를 보며 왠지 데자뷔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 닮은꼴이 간호간병 통합병동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이 역시 돌봄을 의료에 덧붙여지는 부가서비스로 염가 묶음판매로 해결하는 꼴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저렴한 비용으로 병원에서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스스로 활동이 가능한 경증환자들뿐이다.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비용으로 돌볼 수 있는 환자의 중증도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중증 또는 말기 환자들은 통합병동 입원이 불가능하다. 그들이 이용해야 하는 민간시장의 간병인들은 인력파견업체의 열악한 처우와 보수를 견뎌야 하는데, 돌봄전담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상황일 것이다. 적은 돈과 땜질식 정책으로 ‘국가가 책임진다’는 그림을 보여 주기 위해 사람이 함부로 휘둘린다. 간호사가, 간병인이, 교사가, 그리고 돌봄전담사가.

 교육과 의료는 그 자체로 전문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서비스다. 주로 돌봄과 함께 이루어지고 100% 분리할 수 없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돌봄을 함부로 얹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돌봄노동에는 별도의 전문성과 질 관리가 필요하고 합리적인 보수를 지불해야 하며, 이 일을 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존경과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더 위험하고 힘들어진 돌봄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아서 클라인먼은 치매로 고통받는 아내를 돌본 경험을 쓴 저서 ‘케어’에서 돌봄노동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돌봄이 인간의 우주에 영원히 자연스러운 요소로 존재한다는 우리의 순진한 가정이 피상적이고 근거도 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성장을, 또는 회복을 위해 그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알아차리며 돕는 행위는 숭고한 상호작용이며 인간의 존재에 필수적인 노동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는 선의는 결코 아니며, 우리 사회가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하고 대접해야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20-12-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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