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루앙, 20세기, 라오스 비엔티안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장
라오스 지폐
오늘날 탓루앙의 자리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왕의 불교 포교단이 가져온 석가모니의 가슴뼈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라오스에 불교가 아주 오래전에 전래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만든 전설일 것이다. 전설은 증명할 수 없기에 전설이다. 13세기에 크메르 사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이보다 더 신뢰할 만한 탓루앙의 기원은 세타티랏 왕이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에서 중부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1566년 사원을 건립했다는 전승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호빗 판 베조프는 1641년에 쓴 기록에서 “(탑의) 꼭대기가 1000파운드가량 되는 금잎으로 덮여 있다”고 했다. 그는 탓루앙에서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린 란상 왕국의 수린야 봉사 왕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라오스는 쇠락했고, 1828년 태국의 침략으로 ‘위대한 탑’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탓루앙은 라오스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에 의해 재건됐다. 복원의 근거는 당시 인도차이나 일대를 탐험했던 루이 들라포르트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1940~41년 태국과의 전쟁 때 공습으로 또다시 파손됐다가 복원된 현재의 탓루앙은 사실상 20세기의 건축이다.
라오스 민족주의가 자신들의 건축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 프랑스의 손으로 복원된 탓루앙을 통해 상징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 혹은 문화재의 가치는 그 외적인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 끝없는 전승에 있는 것이 아닐까.
2019-06-04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