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수하겠다니 “딴 데 가보라”, 황당한 경찰

[사설] 자수하겠다니 “딴 데 가보라”, 황당한 경찰

입력 2019-08-20 17:30
업데이트 2019-08-2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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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살인 사건 피의자를 경찰이 “다른 데 가보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강 몸통 시신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지난 17일 새벽에 서울지방경찰청 안내실로 찾아가 자수 의사를 밝혔더니 당직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그렇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의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안내실의 당직 경찰관은 자수하겠다는 피의자의 말에 “무슨 내용을 자수하러 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피의자가 “강력 형사에게 말하겠다”고 하자 “강력 형사가 있는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대응했다. 당시 안내실에는 의무경찰 2명도 같이 있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피의자가 종로경찰서를 곧바로 찾아가 자수했기 망정이지 마음을 바꿔 잠적이라도 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황당하고 아찔할 뿐이다.

끔찍한 살인 사건의 범인인 줄 알았다면 문제의 경찰관이 그렇게까지 안이한 대응은 물론 하지 않았을 게다. 그렇더라도 이건 흘려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경찰청 훈령인 범죄수사규칙에는 관할 지역이 아니더라도 자수는 반드시 접수하도록 명시돼 있다. 부득이하게 사건을 다른 경찰서로 인계할 때는 피의자 인도서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업무의 기본 매뉴얼조차 챙기지 않는 나사 빠진 행태가 경찰 곳곳에 만연한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스럽다.

경찰의 황당한 헛발질은 꼬리를 물고 터진다. 버닝썬 사건만 해도 봐주기 수사 의혹이 커지자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경찰의 명운을 걸겠다”며 허둥지둥 뒷북 수사를 지휘했다. 고유정 살인 사건은 현장 보존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초기 수사가 오죽 엉성했으면 경찰청이 자체 진상조사팀을 제주로 파견해 부실 수사를 조사하는 희극을 연출했겠는가. “이런 수준의 경찰한테 뭘 믿고 수사권을 맡기겠느냐”는 우려와 원성이 보통 따갑지 않다.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검찰 개혁안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높다. 경찰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의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19-08-21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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