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입력 2019-04-15 18:02
업데이트 2019-04-1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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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핀 봄날 종묘를 보고 싶어 하는 몇 분과 종묘 나들이를 했다. 고구려부터 존재했던 전 왕조의 종묘는 추정 유적지로 흔적만 겨우 남았지만, 조선의 종묘는 온전히 남아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종묘의 정전은 죽은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왕가의 사당이다. 왕이 죽으면 신주를 이곳 정전에 모셨다가 그 밑으로 다섯 왕이 죽으면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신주를 땅에 묻게 된다. 그러나 조선의 종묘는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영녕전이라는 별묘를 지어 그곳에 모시고 대부분의 왕은 불천위로 만들어 정전에서 영원히 모셨다. 불천위는 공덕이 큰 왕을 기리기 위해 영원히 모시는 것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평가가 후해서 몇몇 왕을 제하고는 대부분 불천위가 됐다.
최세일 한건축 대표
최세일 한건축 대표
종묘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명의 왕 외에 훗날 왕으로 추존된 왕들이 모셔져 있다. 25명의 왕 중 19명이 불천위로 정전에, 단명하거나 힘이 없었던 왕 6명과 9명의 추존왕, 영친왕 등 16명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추존왕이란 세자로 책봉돼 왕이 됐어야 하지만, 단명하거나 왕위에 오르지 못해 후대에서 왕의 칭호를 받은 왕과 태조의 4대조까지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세자를 비롯해 다섯 명이 추존왕이 됐다.

정전은 문이 세 곳에 있다. 그 하나는 신문이라 하여 죽은 왕의 혼이 드나드는 문이니 신주가 들고 날 때만 열린다. 신문의 중앙에는 신이 다니는 신로가 있다. 나머지 두 문은 제례를 위한 출입문이다. 동문은 왕이 재궁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제례를 위해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동문에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월대를 오르기 전 동 월랑을 만난다. 종묘에 원래는 없는 양식이나 태종이 월랑을 만들게 했는데 꼭 학의 날개를 보는 듯하다. 양쪽의 월랑 중 동쪽은 비어 있고 서쪽은 벽을 막아 대칭을 깨뜨렸다. 동쪽을 비움으로써 재궁 쪽에서 진입하며 기둥 사이로 정전 건물 전체를 볼 수 있다. 불국사가 청운교, 백운교를 오르면 불국이듯 정전의 월대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구별해 신성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월대는 좌우 폭이 109m에 앞뒤 폭이 69m에 이른다.

박석이 깔린 월대는 정전 건물의 규모와 합해져서 텅 빈 느낌이다. 박석이 거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걸음을 신중히 하라는 의미와 자연광이 난반사돼 눈부심을 줄여 주는 의미다. 정면의 신문 앞에서 정전을 바라보면 하월대, 상월대, 처마선, 용마루선의 긴 수평선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수평선들은 보는 이를 포함해 모든 것을 땅이 붙잡고 있는 느낌이라 관찰자를 차분하게 한다. 합각의 추녀같이 날아갈 듯한 미려함과 화려한 공포도 없이 긴 맞배지붕이 차분하게 분위기를 잡아 준다.

건물의 위계로 보아서는 궁궐의 정전만큼 화려한 장식이 어울리지만 엄숙함과 차분함을 위해 화려함을 내려놓았다. 신문을 통해 정전의 영역에 들어서면 101m의 정전 건물이 보이지만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을 더 멀리 배치하면 되겠지만, 일부러 한눈에 다 안 들어오는 거리에 문을 내 건물의 크기에 압도당하게 했다. 정전은 다섯 칸에 협칸을 더해 일곱 칸으로 시작해서 열한 칸으로 증축됐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광해군이 11칸의 정전을 완성하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다.

조상의 사당을 완성했으나 정작 광해군 자신은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정전에 못 들어간 두 명의 군주 중 한 명이 된다. 목조 건축의 증축은 다른 구조의 증축과 비교해 어렵다. 서에서 동으로 증축됐기 때문에 건물의 중심축이 옮겨지며 월대나 남문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중심축을 따라 이동했다. 정전의 증축이 대단한 것이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자세히 보면 기둥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흘림의 정도가 조금씩 달라 열한 칸의 기둥에서는 배흘림이 관찰된다. 이후에 사용된 기둥은 민흘림에 가깝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518년 조선 왕조를 지키며 지금에 이른 종묘의 진면목을 보려면 5월 첫 주와 11월의 첫 주에 종묘제례를 함께 볼 수 있을 때 가보는 걸 추천한다.
2019-04-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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